"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1940년대 윈스턴 처칠 이후 가장 카리스마 넘친 지도자."

영국 가디언지는 마가릿 대처 전 총리의 서거에 애도를 표하며 이렇게 묘사했다. 1979년 총리에 취임, 내리 3연임하며 1990년까지 영국 총리를 역임했던 대처는 대처리즘(Thatcherism)이라는 수식어를 남기며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1925년 영국 중서부 랭커셔주의 잡화점을 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대처 총리는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 1953년 변호사가 됐다. 1959년 보수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당선,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그의 나이 34세때였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연금·국민보험부 차관을 지냈고 1969년 교육장관을 맡아 이후 과학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1975년 보수당 대표에 당선됐고, 1979년엔 총선에서 승리,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1979년 총리 취임 일성에서 그는 "문제는 사회주의적 병폐"라며 강력한 개혁정책 시행에 나섰다. 철강과 광업 등 공기업을 민영화했고 과감한 세제개편으로 과도한 복지를 줄이는 데 앞장섰다.

일부에서는 그의 조치가 너무 급진적이라며 비난했지만 덕분에 영국내 만연했던 나태함과 이기주의를 치유, 영국병으로 불리던 고질적인 병폐를 없앴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의 정치는 기존에 있던 여성정치에 대한 편견도 허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집안에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여성이야말로 국가의 문제도 무엇인지 잘 안다"고 말하며 여성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포클랜드섬을,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을 통해 승리해 영국령을 확실히 한 것도 치적으로 꼽힌다.

그와 동시대에 정치를 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그에 대해 "마가릿은 언제나 솔직했으며 문제가 있으면 정면돌파를 했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1990년 총리에서 퇴임한 후 이듬해 정치 은퇴를 선언했으며 이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급격한 노화를 겪으며 2001년과 2002년 치매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의 남편 데니스 경은 2003년 사망했다.

지난해에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12월 비대해진 방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총리실 공식 트위터를 통해 "내가 많은 것을 보고 배웠던 대처 총리의 서거는 참으로 슬픈 일"이라며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와 위대한 총리, 위대한 영국을 잃었다"고 슬픔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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