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과 밴(VAN)사, 카드사를 거치는 복잡한 카드 결제 방식이 이달 말부터 획기적으로 단순화된다.

신용카드 결제 승인을 대행해 '중간 유통상'격인 밴사의 역할을 축소하고 카드사와 가맹점이 직접 처리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카드 결제 구조의 단순화는 앞으로 카드 수수료가 그만큼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밴사로서는 졸지에 설 땅을 잃게 돼 결제 승인 거부 등 초강경 대응으로 맞설 예정이어서 카드사와 전면전을 예고했다.

12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KB국민카드는 오는 23일부터 밴사의 카드 결제 매입 대행을 전격 중단하고 해당 업무를 직접 처리하겠다는 내용의 '신용판매내역 전자매입방식 변경 안내' 공문을 지난 3일 각 밴사에 통보했다.

가맹점이 신용판매내역을 밴사에 전송 후 밴사에서 카드사로 매입하던 방식을 없애고 가맹점 신용판매내역을 카드사가 직접 매입한다는 내용이다.이 매입 업무는 밴사 매출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국민카드 관계자는 "그간 카드 수수료가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가맹점, 밴사, 카드사로 이어지는 복잡한 결제구조 때문이었다"면서 "많은 수수료가 빠져나가는 밴사의 역할을 줄이면 카드사로서는 경영 부담을 덜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맹점 수수료를 더 낮출 수도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카드결제 과정에서 밴사를 아예 배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카드사가 직접할 수 있는 결제 매입 업무만 밴사에서 가져와 카드 결제 구조를 합리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한카드, 삼성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 하나SK카드, 비씨카드, 우리카드 등 다른 카드사도 국민카드를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밴사는 신용카드사를 대신해 가맹점 모집과 카드 단말기 관리, 카드 승인·전표 관리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고객이 카드로 결제할 때는 승인이나 전표 관리 등에 필요한 밴 비용이 들어간다.

건당 결제액은 80~150원 정도다.

문제는 1만원 이하 소액 결제가 급증함에 따라 고객이 카드 결제할 때 부과되는 밴사 수수료가 영세 가맹점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국민카드의 경우 1만원 이하 신용카드 결제 건수는 13만여건으로 전체 결제 건수의 30%에 달한다.체크카드는 50%에 육박한다.

카드사들은 지난해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으로 카드 수수료율을 크게 내려 경영 압박이 심한 상황이라 금융 당국에 밴사 수수료의 합리화를 요구해왔다.

국민카드는 당국의 대책을 기다리기엔 늦다고 판단해 직접 카드 결제 매입을 선택한 것이다.금융위원회도 밴사 수수료의 문제를 인식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연구 용역을 맡기는 등 밴사 수수료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이에 대해 밴사들은 대기업의 횡포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카드사들이 자체 구조 조정은 외면하고 중소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밴사만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신용카드밴협회와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는 국민카드가 직접 매입 업무를 맡는 것은 '밴사 죽이기'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에 따라 철회하지 않으면 매출 조회 서비스 중단, 승인 업무 거부 등 단체 행동도 불사할 방침이다.오는 16일에는 국민카드 본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도 준비 중이다.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 관계자는 "사전에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제 매입을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생존권 사수를 위해 국민카드 거부 운동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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