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신임 헌법재판소장은 12일 "헌재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장기 공백사태가 유지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하거나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소장을 이날 취임식 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헌재 운영방안, 인사청문회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헌재 공백사태는 국가 긴급사태 못지않은 헌법 장애상태"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국회가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데 대해 후보의 자질과 도덕성에 큰 문제가 없다면 공석 사태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청문보고서를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은 박 소장과의 일문일답.

--헌재가 처리 기한을 넘긴 사건이 상당수라는 지적이 있다.
▲이강국 소장이 취임할 때 평균 처리기간은 348일이었는데 최근에는 377일이다. 상당히 지연된 게 틀림없고 사과 드려야 할 부분이다. 다만 상당 부분 재판관 공석사태가 계속된 영향이 있다. 공석사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게 소망이다. 국회나 임명권자가 충분히 고려해줬으면 한다.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는데.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도덕성이나 전문성,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필요하다. 다만 과정을 보면 후보자와는 관계없는 정치공세 성격도 있다. 후보자의 기본적인 자질과 능력, 도덕성과 관련 없는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빨리 공석사태를 해결해줬으면 하는 게 헌재 소장으로서 바라는 점이다.

헌재는 헌법 기관 중 상징적인 존재다. 공석사태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헌재 공백이 장기화한 예가 있어서 정치권이나 일반 국민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국가 긴급사태 못지않은 헌법 장애상태라고 표현하고 싶다. 헌재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장기 공백을 유지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하거나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헌재의 다양성 문제를 두고도 논란이 많은데.
▲공감하는 부분이다. 헌재는 국민 생활을 살펴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게 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하려면 아무래도 재판관부터 다양하게 구성돼야 한다. 일본은 15명 중 5명 정도가 법률가가 아닌 외교관이나 관료, 학자 등으로 구성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예들이 많다. 다만 헌법에 헌법재판관은 법관이나 법률가 중 임명하게 돼 있어 구성을 달리할지는 국민적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묻히는 일이 없도록 교수나 다른 분야에서 임명됐으면 한다.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양 기관의 갈등이 계속되는 모양새인데.

▲권한 다툼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 헌법과 법률의 해석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입법상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법률의 헌법재판권은 헌재가 갖고 있고 명령과 규칙의 경우 대법원이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법률을 개정해서 입법적인 해결로 가야 한다.

--취임사에서 헌재의 독립성을 언급했는데 대법원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나.
▲아니다. 재판 이론 상당수가 독일이나 일본에서 수입한 것인데 실제 우리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 국민에게 맞는 이론을 개발하고 심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헌재소장의 임기 논란이 있었다.

▲헌재소장의 임기를 새로 시작하려면 사퇴하고 새로 임명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퇴하지 않고 동의를 받았다. 그러면 명확하게 제 임기는 새로 6년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 잔여 임기인 4년이다.


--앞으로 헌재소장 임기의 전례가 될 텐데.
▲그리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전효숙 전 재판관 사례가 있어 잔여임기를 적용키로 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대통령이 임기가 조금 남은 분을 임명했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분을 임명하거나 하면 헌재의 위상이 저해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법에 헌재소장 임기에 대한 명문규정을 둬야 한다.

--공직을 염두에 둔 후배 법조인에게 조언한다면.
▲최근 김능환 전 대법관이나 이강국 전 소장이 많은 시사점을 줬다. 같은 생각이다. 최고의 공직을 지낸 분은 될 수 있으면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사회에 봉사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공직을 떠나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선택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소위 전관예우 문제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무조건 전관예우라고 매도하면 사실 답이 안 나온다. 언론에서도 관심을 두고 국회에서 논의해 대책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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