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수사팀 마찰, 조직 내분으로 비화

국가정보원 직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 수서경찰서가 수사 결과를 내놓자마자 경찰이 내분을 겪고 있다.

수사 결과 발표와 때를 맞춰 고위층의 부당한 수사개입이 있었다는 현직 경찰 간부의 주장이 이어지면서 경찰 조직이 내홍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수서경찰서가 18일 국정원 직원 김모·이모씨와 일반인 이모씨를 국정원법위반(정치 관여 금지)에 따른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함에 따라 이제 사건 규명의 책임은 검찰에 넘어갔으나 경찰은 사건 후폭풍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국정원 사건 의혹…경찰 내부 진실게임으로 관련 이미지

◇ 고위층 vs 실무팀 '시시각각 불협화음' = 작년 12월 수사에 착수했던 수서경찰서는 4개월 만에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부실 수사' 논란은 여전하다.

초기 수사를 이끌었던 권은희 수서경찰서 전(前)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이 제기한 '수사 축소·은폐 지시' 의혹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경찰 수사 내내 가시지 않았다.

배경에는 수사실무팀과 고위층의 불협화음이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사흘 전 심야에 기습적으로 발표했던 경찰의 중간수사결과가 시발점이 됐다. 당시 경찰은 대선후보들의 TV 토론이 끝나기 무섭게 보도자료를 내고 "대선후보와 관련한 국정원 직원의 지지·비방 댓글 흔적은 없다"라고 밝혔다.

이에 여론은 경찰이 대선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며 들끓었고 야당은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수사팀을 이끌던 권 과장도 예상치 못했던 보도자료에 당황해야 했다.

권 과장은 그때 상황과 관련해 최근 "수사책임자가 알지도 못하는 보도자료라는 게 있을 수 있느냐, 뭔가 속은 느낌이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단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추출한 몇 개 키워드만 가지고 '댓글 흔적 없다'는 결과를 공표하는 게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 과장의 태도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당시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을 비롯한 경찰 고위층과의 마찰은 시작됐다.

국정원 직원 김모(29·여)씨의 인터넷 활동이 언론의 자체 취재로 보도될 때마다 언론 대응에 나섰던 권 과장은 적정한 범위 안에서 수사 경과를 설명하고 관련 사실 여부를 기자들에게 확인해 줬다. 국민도 알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윗선은 김씨의 혐의 사실이 공표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꼈고 알게 모르게 권 과장을 비롯한 실무팀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갈등 속에서 '원칙 수사'를 강조하던 권 과장은 끝내 수사에서 손을 떼야 했다.

급기야 권 과장이 지난 1월 김씨의 인터넷 게시글이 특정 정당에 유리한 '일정한 패턴(경향성)'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경찰 상부에서 호된 질책이 있었고 다음 달 권 과장은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전보발령됐다.

반대 여론을 의식한 경찰 고위층은 권 과장을 수사 마무리까지 새 수사과장과 합동수사하도록 했으나 권 과장이 거절했다.

권 과장은 당시  "수사 보고 라인에서도 뺀 건 더는 수사하지 말라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송파서 경찰서 수사과장으로서 수사상황을 지켜보던 권 과장은 연합뉴스에 수사 초기 과정에서 직접 눈으로 봐온 윗선의 부당한 지시 정황을 조목조목 공개했다.

그는 "한때 동고동락했던 수사팀에 누가 될까 봐 많은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정"이라며 이는 "거창한 폭로가 아닌 차근차근한 설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서울청 "사실무근" 반박…'진실게임'으로 비화 = 1기 수사팀을 이끌던 권 과장의 폭로가 나오자 '윗선'으로 지목된 서울경찰청은 19일 즉각 해명 보도자료를 냈다.

권 과장이 제기한 의혹과 관련해 서울청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김씨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분석할 키워드 개수를 줄이라며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대선과 상관없는 단어들이 많아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등 핵심 키워드 4개를 선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분석과정에서 나온 김씨의 아이디와 닉네임 40개도 '키워드 검색'을 했다며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키워드 선정은 수사주체인 수서경찰서 수사실무팀의 권한이지 의뢰를 받은 서울청의 소관이 아니라는 게 권 과장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서울청은 또 김씨가 스스로 참관을 거부해 분석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나 권 과장은 지난달  "사생활 보호와 분석 시간을 핑계로 김씨에게 허락을 받은 파일만 열어 볼 수 있게 했다"며 "분석과정에 참여한 사이버 팀장을 즉각 철수시켰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국정원 사건'은 이제 경찰 내부의 '진실게임'으로 흐르고 있다.

권 과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이 사건의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을 당시 국회에 나가 증언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며 권 과장의 안위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시시비비를 가려야겠지만 권 과장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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