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검찰의 칼', 영원히 역사관으로 퇴장

국민들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중수부 폐지는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수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여야는 합의로 이미 중수부 폐지를 확정했다. 이에 검찰은 중수부 폐지와 동시에 특별수사지원부서를 신설해 특수수사 공백을 막기로 했다.

23일 오후 3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0층에서 열린 중수부 현판 하강식에는 그야말로 전·현직 중수부 소속 검사들이 대거 참석해 중수부가 해체되는 현장을 지켜봤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박유수 대검찰청 관리과장이 ‘중앙수사부’ 현판을 벽에서 떼어냈다. 박 과장은 왼편에 현판을 끼고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줄지어 선 옛 중수부 출신 검사들이 박 과장 옆구리에 들린 대검 중수부 현판을 침통한 눈빛으로 좇았다.  떼어진 중수부 현판은 대검찰청 4층 검찰역사관에 영원히 보존하는 한편 앞으로 중수부에 관한 백서를 발간하고, 검찰역사관 안에 중수부 부문을 설치해 중수부의 공과를 남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중수부를 대체할 ‘특별수사체계 개편 추진 태스크포스’의 이동열 팀장은 다음과같이 회고 했다. “드높은 자부심 반대편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자라고 있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것이 후회스럽고 ‘국민의 칼’이 됐어야 할 중수부가 국민의 불신을 받아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음에 마음 아프다”고 속내를 밝혔다.

공포의대상, 소위 우리들이 말하는 '중수부'! 즉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3일 현판을 내리면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1961년 전신인 대검 중앙수사국이 발족한 지 52년이고  5공 출범과 함께 개편된 지 32년 만의 일이다.

중수부를 권력형 비리 수사의 총본산이라고 하고 ‘정치 검찰’ ‘권력의 시녀’라는 수식어를 통해 비아냥을 들으며 영욕의 길을 걷다가 검찰 개혁의 큰 물결에 휩쓸리자 결국 영원할것 같았던 그 권력도 시대의 요구에 어쩔수 없이 역할을 마감하게 됐다. 현판 하강식의 분위기가 침통했다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중수부는 ‘너무도 잘 벼려진 칼’이었다. 1982년 이철희 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부터 시작해 한보 비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율곡사업 비리, 현대차 비자금, 불법 대선자금 사건 등 ‘게이트’형 비리 수사들이 중수부의 대형 작품이었다. 현철 씨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 씨는 모두 아버지가 현직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 중수부 수사로 구속 기소되는, 한국에서만이 볼수있는 가장 슬픈 현실이었다.

이런 중수부의 서슬퍼런 칼을 권력자는 너무 쉽게 빼들었다. 가장 큰 저항에 부딧친건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부터다. 중수부는 극심한 정치적 중립 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이후 C&그룹 비리 수사나 민주당 공천헌금 사건에서 야당 의원들은 끊임없이 중수부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내기시작 했다. 지난해 대선을 거치면서 중수부는 결국 ‘국민의 뜻’에 따라 폐지라는 운명을 맞게 됐다.

대검 중수부는 그동안 전, 현직 대통령의 아들들과 대기업 총수들을 구속하는 등 나름대로 부패 척결에 앞장서 왔다. 그러나 권력의 이해에 따라 수사와 기소 권한을 오, 남용하고 급기야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과(過)가 공(功)을 덮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검찰 스스로도 박연차 사건과 한보 비리 사건 등을 평가하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고 수사 축소 의혹을 받았다며 지난날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검 중수부 폐지는 이번 기회에 검찰을 제대로 개혁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국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상설 특검과 특별감찰관제 등을 도입하고 거대 비리 수사의 순기능은 살리고 수사와 기소를 오, 남용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인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 보장은 물론 장기적으로 검, 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 일부도 당당하게 내려놓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검찰 역시 오늘의 현실을 교훈 삼아 뼈저린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검찰 내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제도 개편 작업이 ‘상설 특검’을 ‘제도 특검’으로 맞받는 등 기득권을 손에 꼭쥐고 놓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이번처럼 검찰이 중수부 폐지와 같은 회한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검찰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거듭난다는 일념으로 이번이 국민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잘 인식해야만 한다고 권하고 싶다.

그러나 검찰의 칼끝은 계속해서 권력자의 부정부패와 경제질서를 어지럽히는 기업 비리를 겨눠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그것은 검찰에게 주어진 고유 업무이기 때문이다.

한편 중수부 수사 대체 시스템을 만드는 ‘검찰 특별수사체계 개편 추진 태스크포스(TF)’는 일선 청의 특별수사를 엄정하게 지휘·감독하는 컨트롤타워를 6월까지 만들어 내게 된다고 한다.

부정부패 수사의 메카로 여겨지며 검찰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대검 중수부! 이제 검찰 개혁과 맞물려 진행된 존폐 논란 끝에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중수부를 다시꺼내어 살펴보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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