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경험 살린 이희자 대표 “도전하세요, 실패해도 얻는 게 있습니다"

루펜리 이희자 대표는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루펜리 이희자 대표는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주방에도 아이폰처럼 혁신을 불러온 제품이 있다. ‘음식물 처리기는 냄새나고 지저분하다’는 편견을 깨고 네모 반듯한 하얀색 바탕에 밝은 녹색과 핑크, 스카이블루 등의 동그란 디자인을 넣은 음식물쓰레기처리기 ‘루펜(LOOFEN)’이다. 루펜은 국내 1호 음식물쓰레기처리기다. 회사를 대표하는 제품에 이 대표의 성을 붙여 ‘루펜리’라는 사명이 탄생했다.

루펜리 이희자(59) 대표는 생활 속에서 느낀 불편함을 제품으로 구현시켰다. ‘냄새가 안 나는 음식물쓰레기처리기가 있으면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참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단순한 아이디어는 이 대표를 창업가의 길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남들과 다름없는 40대 주부로 살다가 ‘2005년부터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가 의무화된다’는 뉴스를 접했어요. 음식물쓰레기를 갈아서 강이나 바다에 방출하는 걸 법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이었죠. 무심코 버리는 음식물쓰레기가 강이나 바다를 오염시키는 게 심각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고사리나 시래기처럼 말리는 음식이 많은데, 먹다 남은 음식도 부패하기 전에 말리면 재활용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이 대표는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중소기업창업지원자금을 받아 1998년부터 음식물쓰레기처리기 개발에 매달렸다. 무역학과 출신의 남동생, 전기를 다룰 줄 아는 직원과 머리를 맞대고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창조해내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도 겪었다. 음식물을 말리는 기술까지는 성공시켰지만 악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대표는 냄새 제거 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한 회사를 찾아가 “당신네 대표를 만나기 전까지는 돌아갈 수 없다”며 열의를 보였고,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개발 2년여 만에 음식물쓰레기처리기 ‘루펜’이 탄생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기술은 얻어올 수 있어요”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려면 이공계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기술은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려오면 된다고 봐요. 이미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많아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구현할 전문가만 찾으면 되죠. 1부터 100까지 모두 알아야만 창조가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창업 초기부터 과학기술에 디자인이 접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은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백색 가전 일색이던 국내 가전업계 시장에 역행하는 일을 벌였다. 와인색이 가장 과감한 시도로 여겨지던 때에 루펜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을 입혔다. 밝은 녹색이나 핑크 같은 강렬한 색깔을 쓰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제품의 완성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중소기업 제품이라고 해서 디자인적으로 마무리가 덜 되어 있거나 투박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예쁘고 세련되어야 한다고 봤죠. 사람도 명품 옷을 걸치면 폼이 달라지는데 제품이라고 다르지 않잖아요.”

루펜리의 창조성은 디자인에서 발휘된다.
루펜리의 창조성은 디자인에서 발휘된다.

이 대표의 도전정신이 반영된 루펜 제품들은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단순함’을 무기로 한 루펜 제품들이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Red Dot)·iF 디자인(International Forum Design)·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 상을 수상했다.

“주부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어요. 주부들은 예쁜 걸 좋아하거든요. 음식물쓰레기처리기라고 하면 지저분한 이미지가 있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디자인 콘셉트를 ‘깨끗함’으로 정했어요. 물방울 모양의 가습기를 만든 것도 틀에 박힌 네모난 가습기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였어요. 고객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 노력이 고정관념을 깬 디자인을 만들어냈습니다.”

루펜리의 창조정신은 기업문화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루펜리 직원들은 과장·대리와 같은 직함 없이 모두 ‘매니저’로 불린다. 직원 모두가 ‘고객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가치를 공유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다. 부서 역시 일반 회사처럼 영업부·경영지원부·기획부와 같은 구분 없이 ‘고객가치창조그룹’ ‘고객가치지원그룹’ ‘고객가치전달그룹’의 세 그룹으로 이뤄져 있다.

직원이 낸 아이디어, 제품에 반영하고 곧바로 보상

직원이 낸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품에 반영하고 곧바로 보상했다. 일상에서 발휘되는 직원들의 창의력을 독려하기 위해 아침이면 다같이 유행하는 춤을 추기도 했다.

루펜리는 세계적인 친환경 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음식물쓰레기처리기 ‘루펜’으로 유럽을 비롯해 일본과 대만·싱가포르·태국·베트남 등 세계 각지로 이미 진출한 상태다. 이 대표는 루펜의 인기를 잇는 차기 친환경 제품을 선보여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창조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으로 ‘실천’을 꼽는다. “생각은 누구나 해요. 머릿속에 창조적 아이디어가 있는데 실천을 안 할 뿐이죠. 모두가 실패를 할까 봐 시작을 못해요. 그러나 실패를 하더라도 분명 얻게 되는 게 있어요.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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