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안(추경)의 국회 심의가 여야의 가파른 대치로 멈춰서면서 경제회생의 마중물 역할은 커녕 '실기(失期)'에 따른 아까운 재정 낭비만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야는 당초 17조3천억원 규모로 정부가 편성한 추경안을 3일 또는 6일 처리하기로 합의했으나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성 '쪽지예산' 끼워넣기 등 '돌출사건'이 발생하면서 심사에 제동이 걸려 급속히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ㆍ여당은 추경통과의 타이밍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5일)전 처리를 주장하고 있으나 민주통합당은 추경안 처리에 앞서 재정건전성 대책을 마련하라며 2일까지 이틀째 심의를 거부한 상태다.

민주당은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은 물론, 조세 감면을 받아도 최소한의 과세부담을 지게 하는 '최저한세' 상향조정을 약속해야 추경 심의 테이블에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이번 추경은 15조 8천억의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빚더미 추경"이라며 "내용에 있어서도 무기 구입사업, 댐 건설 사업 등이 반영돼 있고 특히 대구·경북에만 27%의 예산이 편중돼 있다"며 애초 취지인 민생과는 거리가 먼 '부실 추경'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최저한세율은 이미 미국, 캐나다, 대만 보다도 20∼30% 높은 데다 소득세 조정은 추경과 무관한 사안이라는 게 정부·여당의 주장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추경은 경기진작을 위한 것인데 증세를 하게 되면 오히려 경기가 나빠져 실효가 없어지며 ▲대기업 증세는 하더라도 내년부터 적용가능한 만큼 올 정기국회에서나 논의될 사안인 만큼 추경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또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 인하 등의 부자증세도 작년 법안심사 과정에서 시행하지 않기로 결론났으며, 경제가 어려울 때는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여야가 이렇게 입장을 달리하면서 애초 설정한 1차 처리 시한인 3일은 물건너 갈 공산이 크고, 이러한 기싸움이 계속돼 2차 시한인 6일마저 넘기면 4월 임시국회 처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특히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이른바 '쪽지 예산' 끼워넣기를 통해 지역구 민원사업 해결에만 연연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 비난여론을 자초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까지 심의를 마친 8개 상임위의 증액 규모는 1조4천66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세출 기준 추경 예산액 5조3천억원의 27.7%에 달한다.

특히 도로나 문화센터 건립, 대학시설 확충과 같이 임기 중 '치적'을 과시하기 위한 민원사업이 집중되기 마련인 국토교통위,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1조2천700여억원의 증액이 이뤄졌다.

이처럼 예산심사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늑장·졸속 심의 우려를 키우고 있고, 여기에 '쪽지예산' 논란까지 겹쳐 추경의 근본취지가 탈색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정부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전 설명 없이 국회에 명세표만 덜렁 던져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달 25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미흡한 경제 예측과 세입 전망으로 추경을 편성하게 돼 송구스럽다"고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사실 애초부터 기한 내에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회기 내에 통과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사석에서는 고위 당직자조차 "이번에 통과되면 기적"이라고 자조 섞인 전망을 할 정도였다.

민주당은 5·4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어 선명성 경쟁이 벌어지고, 원내대표 경선을 치러야 하는 새누리당 역시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다.

이 때문에 이달에 교체되는 현재의 여야 원내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여야는 협상력을 복원하기보다는 책임을 서로 미루며 '네탓'만 하고 있다.

새누리당 예결소위 간사인 김학용 의원은 브리핑에서 "민주당의 주장은 추경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발목잡기"라면서 "증세를 통해 경제정책을 운용하고 싶다면 돌아오는 대선에서 정권을 잡으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예결소위 위원들은 보도자료에서 "정부는 빚더미 추경에 대해 무책임, 무대책,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실질적인 재정건전성 회복 대책 없이 추경을 통과시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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