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노동자에 대한 사회·직장 내 인식 바뀌어야"

60세 정년 시대 ⑥ 고령자 껴안는 문화 정착돼야 관련 이미지

"지금 대학생들 취직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들의 등록금은 부모들이 내준 겁니다. 젊은 사람들 일자리가 없으니 나이 든 사람들더러 나가라고 한다면 결국 그 젊은이들의 부모가 실직하게 되는 겁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정모(52)씨는 요즘 심경이 복잡하다.

정년 연장 입법으로 더 오래 일할 기회가 생겼지만 사내 분위기는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 소식이 전해진 이후 후배들이 모이기만 하면 "위로 갈수록 바늘구멍"이라고 수군거리는 모습이 부쩍 눈에 띄었다.

수십 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지금의 위치까지 왔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정씨가 다니는 회사는 정년까지 채우고 나가는 이가 많지 않다.

그는 "내가 속한 파트는 600명 규모이지만 지금껏 정년을 채우고 나간 사람은 10명이 채 안 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사실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희망퇴직'에 지원해도 크게 나쁠 건 없다.

퇴직금에다 정년까지 남은 기간의 월급도 얹어 주는 괜찮은 조건이다.

그래도 정씨는 "돈 문제가 아니라 노는 것보다는 일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아직 신체가 건강한 만큼 일을 해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얻고 싶다는 것이 정씨로 대변되는 정년을 앞둔 중장년들의 바람이다.

정년연장 논의가 시작된 이래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정년 연장으로 일하는 고령층이 늘수록 젊은 층의 노동 시장 진입 기회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다른 한편으론 정년퇴직하는 근로자는 소수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단순히 법적으로 정년을 연장하기만 해서는 현실적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임금에 따른 기업의 부담 증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기업의 경직된 위계적 조직질서와 직무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정년 연장 현실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5일 "45세 이상 임금근로자 중 10% 정도만이 정년퇴직하는 것을 볼 때 법적 정년연장의 혜택을 받아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소수"라며 "기업의 직무 구조가 경직된 탓에 나이가 들면 마땅히 갈 자리가 없어지는 데서 조기퇴직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나이에 따라 직무가 결정되는 현재의 구조가 완화되지 않는 한 정년 연장의 실질적 혜택이 확산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보고서도 "정년연장을 순탄하게 진행하려면 위계적인 조직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려는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회장은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업무는 영역이 다르므로 세대 간 고용 대체 가능성은 작다"며 고령노동자에 대한 사회인식 문제를 제기했다.

고령층을 젊은 층의 일자리를 뺏기만 하는 존재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늘어난 정년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사회와 직장 내에서 고령 노동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수렴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불가피한 변화인 만큼 고령층에 대한 직장 내에서의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고령노동자에 대한 편협한 시선을 바꿔야 한다"며 "경험적·이론적으로 젊은 층과 고령층의 고용은 중첩되지 않는 만큼 직업 현장에서도 고령층 노동인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향후 전체 노동력의 15∼20%를 차지할 고령층이 소외된 경제사회구조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주명룡 회장도 "사회 초년병도 언젠가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을 것인 만큼 이해득실에 양면성이 있다"며 "제도 개선과 더불어 직장 내에서도 고령층을 마냥 배척할 게 아니라 더욱 폭넓은 시각을 갖고 함께 가려는 문화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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