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판결로 우세 점한 노동계, 쉽게 타협 나설 가능성 적어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기간 중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합리적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히면서 통상임금 이슈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10일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정 협의를 다음 달부터 추진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사(勞使)와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들어 올해 안에 가급적 빨리 제도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정부 개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노·사·정 협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 왜 논란이 됐나

통상임금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른 것은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이 지난 8일(현지 시각)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한국에 80억달러를 투자하는 문제와 관련해 "통상임금 문제 등이 해결되면 한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다.

한국GM은 노조와의 통상임금 소송 1·2심에서 패소, 현재 인건비 8140억원을 장기 미지급 비용으로 쌓아놓고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한국 경제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니까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했다.


기본급 3000만원인 A씨,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연금은 어떻게 달라지나 - 그래프
통상임금 논란은 이미 재계와 노동계의 오랜 이슈였다.

작년 3월 대법원이 대구 시외버스 업체인 금아리무진 노조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근속 연수에 따라 미리 정해놓은 비율을 적용해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대법원은 회사 측에 과거 3년간 지급한 휴일·야간근무수당 등을 다시 계산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기 상여금 등 근로시간과 관계없는 급여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행정 해석을 뒤집은 것이다.

재계가 통상임금 문제에 민감한 건 초과근무수당 인상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초과근무수당을 정할 때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하도록 하고 있어 상여금 등이 기본급에 포함되면 초과근무수당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근로자에게는 연봉 인상 효과가 있지만 기업체로선 인건비 부담이 커져 쉽게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다.

재계 "38조 부담", 노동계는 "사법권 침해" 반발

재계는 박 대통령 발언에 환영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은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의 경쟁력과 앞으로 일자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임을 감안할 때 빨리 해결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경총은 고정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기업들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 최소 38조5509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이 한꺼번에 이 비용을 부담하면 37만2000~41만8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많은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데, 대통령이 통상임금에 대해 언급한 것은 자칫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박 대통령 발언은 외국 대기업의 투자 축소 위협에 굴복해 스스로 공언한 노동 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라는 시대적 과제에 역행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법 찾기 쉽지 않을 듯

현재 법원행정처가 파악하고 있는 통상임금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만 11건. 전국 각급 법원에 접수된 통상임금 소송은 100건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작년 3월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산하 노조에 통상임금 소송을 내라고 독려하고 있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노·사·정 합의로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임금 문제는 노사 합의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며, 노사 합의가 안 되면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발휘해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법원 판결로 '우세'를 점한 노동계가 소송을 접고 쉽게 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회사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주는 임금으로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에 규정돼 있다. 기본급·직책수당 등이 포함되며, 휴일·야근 수당, 퇴직금 등을 계산하는 데 기초가 된다. 근로기준법상 기업은 연장·야간·휴일근무를 한 직원에게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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