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전력난, 국민의 저력을 보일때다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닥쳤다. 신고리 1~4호, 신월성 1·2호 등 원전 6기가 불량부품 사용으로 가동이 전면 중지되면서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예고되는 상황으로 가고있다.

원전 전문가들 역시 원전이 재가동되기까지 최소 4~6개월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제조업 중심의 산업계는 가동률 저하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피해는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더 심각한 건 ‘에너지 절약’, ‘과소비 단속’ 등 절전 동참에 대한 호소 외엔 사실상 전력 수급에 대한 현실성 있는 대안이 전혀 없어 ‘손 놓고 하늘만 쳐다봐야’ 하는 상황이란 점이 답답할 따름이다.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산업 현장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전에 의존도가 높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이 타 원료보다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결국 불량 부품을 사용한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올여름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전력 수요는 냉방기를 많이 쓰는 7~8월에 집중적으로 몰려 최고조에 이른다. 올해는 이미 전력 예비율이 사흘에 한번꼴로 10% 아래로 떨어졌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6월 이후 평년 기온보다 높은 고온현상이 가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게 기상청의 예보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공급 능력을 확충할 방안이 없다면 치밀한 수요관리로 정전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나아가 당국은 원전 위주의 공급 정책이 과연 지속가능한지 돌아보고 전체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한국전력은 전력 수요 피크 시기인 8월 둘째 주 최대 전력 수요를 7900만㎾로 예상했다. 그러나 원전의 가동 중지로 최대 공급 능력이 애초 예상했던 8000만㎾에서 7700만㎾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로선 200만㎾의 전력 부족 사태가 예상된다. 당장 원전의 추가 가동도 어렵고 공급을 늘릴 수도 없다.이제는 수요관리밖에는 방법이 없다.

전력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기업체를 중심으로 휴가 분산, 조업 조정 등을 시행하고, 에너지 과다 사용 시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는 원론적 대안만 내놓고 있다.

이번 불량부품 사태로 설비용량 중 300만kW가 빠지면서 올해 총 7871만7000kW로 여름철 전력을 운영해야 한다. 이는 올 최대 전력(7834만7000kW) 대비 예비전력이 37만kW에 불과한 수준으로, 전력수급 위기 ‘관심’ 단계 진입을 의미한다.

예비전력이 100만kW 이하로 떨어지면 지난해 9월15일 상황과 같은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여기에다 전력 공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화력발전소도 지난해 대규모 정전 사태 이후 전력가동을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피로가 한계치에 도달했다.
 
여름철 냉방 수요가 전체 전력 수요의 20%를 차지한다.정부는 어쩔수 없이 실내온도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 또 조명과 간판을 발광 다이오드로 교체하는 등 전기 사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가정에서 절전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전력 수요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에 대한 수요관리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

전기 사용을 줄이면 보조금을 주는 방안뿐만 아니라 피크 시간대에 쓰는 전기요금을 비싸게 받는 등 규제와 인센티브를 다양하게 조합해 효율적인 관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동중이던 원전 54기를 모두 중단하고도 위기를 잘 넘긴 일본의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일본은 발전설비의 30%를 차지하는 원전을 중단하고도 우리나라보다 전력 예비율이 더 높았다. 절전이 몸에 익어 올해는 아예 예비율 목표를 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이는 우리가 일본으로 부터 배워야할 지혜다.

정부는 수요관리에 더해 근본적으로 공급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발전설비는 생태·환경을 파괴할 뿐 아니라 주민 반대 등으로 현실적으로 늘리기도 쉽지 않다. 전기요금이 석유·가스 등 1차 에너지보다 싸다 보니 전력 소비가 자연스레 증가했고,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를 왜곡했다. 이번 기회에 전기의 소중함을 바로 알리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처럼 갑작스런 가동 중단으로 전력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수조원대의 손실이 예상됨으로써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은 바닥을 드러냈다. 원전은 출력 조절이 불가능하고 가동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수시로 변하는 전력 수급을 맞추기 어렵다.

원전 비중은 우리가 일본처럼 30% 정도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의 전력 피크 때는 문제가 되지만 평상시에도 계속 가동하게 되면 사실 전기가 남아돈다. 그렇다면 전기를 많이 쓰는 시기에는 그때만 가동하는 발전소 등으로 대처한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와서 논리싸움만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올여름 전력난을 잘 넘기면 원전 의존도를 낮추면서 탈원전으로 가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수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회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편 지난 2011년 초 여수산업단지 정전 사태 당시 GS칼텍스를 비롯해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26개 석유화학 업체가 70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이후 가동률 저하와 제품출하 지연, 불량률 상승, 운송지장 등 적잖은 후속 피해가 잇달았다.

기업들은 자체 비상발전기 등으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지만 이조차 형편이 좋은 대기업들 이야기다.그러나 이들 대기업들조차 갑작스런 정전에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또 비상발전기는 핵심공정 위주로 배치돼 있어 라인을 정상 가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대기업들은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자구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금호석화는 전력난 대비책으로 열병합발전소 건립 등 에너지 의존성을 낮추기 위한 방안 마련에 착수했으며 LG화학은 납사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등의 부산물을 활용한 자체 발전소를 갖춰 전력난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발전소를 마련한 여수산단을 제외하고 오창 등 다른 공장은 비상발전기 외에 다른 추가 대안이 없어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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