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진실규명 신청 안하면 국가배상 못받아 관련 이미지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군경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의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국가에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는 '서산·태안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피해자 이모씨의 유족 8명이 모두 1억2천6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유족들은 이씨가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공권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족들이 이씨의 사망에 대해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점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사망한 지 60년이 넘어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앞서 지난달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도 '김포 부역혐의자 희생사건' 피해자들의 유족과 상속인 81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진실규명을 신청해 결정을 받은 피해자들의 유족 22명에게만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피해사실의 증거로 받아들이면서도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유족의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없어졌다고 판단했다.

두 판결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적용대상인데도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난달 16일 대법원의 판례를 따른 것이다.

구가배상법과 민법에 따르면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사건이 발생한 지 5년, 불법행위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법원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과거사 관련 소송에서 대부분 진실규명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진실규명 결정일을 '불법행위를 알게 된 날'로 보고 3년의 시효를 적용해왔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는 피해자 측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는 국가의 항변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현재 심리 중인 과거사 관련 소송에서도 같은 사유로 청구가 기각되는 사례가 계속 나올 전망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