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제한' 특약 요구에 입주자 집단소송 승소

SH공사가 장기전세주택(시프트) 입주자들에게 최장 20년까지 임대를 보장하겠다던 애초 약속과 달리 2년 만에 계약조건 변경을 종용하다가 법정 다툼을 벌였다.

전셋집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한 입주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갱신하고서 소송을 내 엄격해진 계약 조건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SH공사는 2009년 재건축으로 들어선 서울 서초동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 266가구를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했다. 일부 우선공급과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을 제외하면 '서울 거주, 본인과 세대원 전원 무주택'의 단순한 조건이었다.

당첨된 뒤 계속 거주를 희망하면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수 있었다. 전용면적 84㎡의 임대보증금이 3억 원, 59㎡는 2억 2천366만 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훨씬 쌌다. 경쟁률은 18대1을 기록했다.

그러나 SH공사는 2011년 첫 계약 갱신을 앞두고 돌연 특약사항을 내밀었다. 소득제한을 새로 적용해 기준 이상이면 퇴거 조치까지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일부 장기전세주택의 소득제한이 없어 저소득층의 입주 기회가 줄어든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시가 관련 규칙을 개정하는 등 자격기준을 강화할 때였다.

저렴한 전세가에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생각으로 입주한 주민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보증금은 10%까지 더 내겠지만 일방적인 특약 추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SH공사는 특약을 포함해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 명도소송을 내겠다고 압박했다.

이 모(51)씨 등 입주자 128명은 어쩔 수 없이 계약서에 서명했지만 "특약을 추가해 바뀐 계약조건을 무효로 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염원섭 부장판사)는 "서로 합의하지 않은 계약 내용은 무효"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변경된 계약서 조항은 모두 SH공사가 입주자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만든 것이고 입주자들이 계약서에 서명하긴 했지만 '법률적 효력을 다투겠다'는 의사표시를 명확히 했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SH공사와 입주자들 사이에 특약을 계약 내용에 집어넣기로 합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추가된 특약은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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