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장고 끝 정치·선거 개입 댓글 원세훈 책임 결론 관련 이미지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정치·대선 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 장고 끝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11일 결정했다.

원 전 원장에게는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키로 했다.

지난해 12월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 6개월, 검찰 수사가 본격 시작된 지 54일 만이다.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는 수사팀 의견과 영장 청구는 물론 선거법 적용에도 난색을 보인 법무부 측 입장을 조율해 절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날 원 전 원장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결정함으로써 그간 불거진 검찰과 법무부 사이의 갈등은 외형상 봉합됐다.

◇국정원법·선거법 위반 적용 이유는 = 수사팀이 원 전 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두 가지이다.

우선 국정원법 9조(정치 관여 금지) 위반이다.

이 조항은 국정원장, 차장과 직원이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검찰은 수사 초반부터 원 전 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 혐의 적용은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국정원 심리정보국 산하 직원들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백개의 아이디를 동원해 1만여 건에 가까운 정치 관련 글을 올리거나 각종 정치 이슈에 찬반 표시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직원들의 게시글 활동이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원 전 원장도 이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는 증거도 확보했다.

민주당이 공개한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말씀' 자료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자료였다.

국정원과 원 전 원장 측은 이를 "대북 심리전 활동의 일환"이라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으나 검찰은 명백한 정치 관여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선거법 적용은 만만치 않은 문제였다.

공직선거법 85조 1항은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원 전 원장이 원장이란 직위를 이용해 직원들로 하여금 특정 정당이나 대선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게 했느냐가 쟁점이었다.

검찰은 사이트 분석을 통해 심리정보국 직원 중 일부가 당시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 수십 건을 올리고 관련 글에 찬반 투표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중 문 후보가 직접 언급된 글은 1~2건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고민 끝에 직원들의 행동이 명백한 선거 개입이며 그 배경에는 원 전 원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찰 내에서는 문제의 댓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데다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나 관련 진술이 없어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러나 수사팀은 결과적으로 '종북세력에 대한 선제적 대응' 등의 내용이 담긴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가운데 일부가 선거 개입 의도로 읽힐 여지가 있어 원 전 원장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비록 일부 직원만의 문제라 해도 그 책임은 기관의 수장인 원 전 원장이 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해 온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악습을 끊어야 한다는 의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선거법 성립 여부에 대한 증거 판단 및 법리가 어렵고 보강 조사가 필요해 결정이 늦어졌다"면서 "수사결과 밝혀진 범죄 혐의 내용, 촉박한 공소시효 만료를 감안해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김용판 등 여타 관련자들 처벌 수위는 = 검찰은 경찰 수사 당시 외압을 행사한 혐의 등으로 고발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김 전 청장에게는 형법상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지난해 수서경찰서가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댓글 사건을 수사할 당시 김 전 청장이 직권을 남용해 수사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했다.

앞서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은 김씨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키워드 78개를 분석해 달라고 서울경찰청에 요청했지만 서울청은 이를 4개로 줄이도록 했다고 폭로했다.

결국 경찰은 대선을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16일 밤 11시에 전격 기자회견을 열어 "댓글 흔적이 없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부실 수사라는 비난을 받았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의 이런 행동들이 직권남용에 해당할 뿐 아니라 경찰공무원법상 정치 운동 금지 조항에도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경찰 수사 발표를 통해 결과적으로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았다.

검찰은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나 민모 전 심리정보국장, 여직원 김씨를 비롯한 댓글 활동을 벌인 직원들에 대해서는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사법처리 여부를 밝힐 예정이다.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기밀 누설 행위나 여직원 김씨의 감금사건에 대한 결과도 일괄적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시기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르면 이번 주 중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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