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와 더불어 기업 구조조정의 '뜨거운 감자'로 꼽힌 쌍용건설이 100일간의 진통 끝에 한숨을 돌리게 됐다.

쌍용건설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은 가장 큰 고비로 꼽힌 국민은행의 동의를 12일 받아내는 데 성공, 법정관리 또는 청산으로 떨어지는 벼랑 끝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권 초기에 대형 건설사가 쓰러지는 데 따른 '파장'을 의식한 금융당국의 압박과 워크아웃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채권단의 '눈치 보기'로 쌍용건설 워크아웃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동안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는 쌍용건설은 조만간 채권단의 긴급 자금을 수혈해 정상화에 나설 계획이지만, 대규모 해외 공사 계약이 파기되는 등 이미 출혈이 심각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난색 보이던 채권단, 금융당국 압박에 '백기'

쌍용건설의 워크아웃은 건설업에 대한 채권단의 불신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내 건설업계가 해외 공사를 따낼 때 관행처럼 된 '덤핑 수주' 때문에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쌍용건설이라도 현금흐름에 지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여러 차례 소집한 회의에서 채권은행들은 "쌍용건설은 해외사업 비중이 크다고 역설하지만, 어차피 손해 보는 공사만 떠안는 게 아니냐"며 지원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건설에 신규 자금, 출자전환, 이행보증 등으로 투입해야 하는 돈이 1조원에 달해 채권액(1조3천600억원)에 육박하는 점도 채권은행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또 쏟아붓느니 차라리 회생절차(법정관리)나 파산절차를 통해 기존의 채권을 일부나마 회수하는 게 경제 논리에 맞다"고 말했다.

쌍용건설의 존속가치(기업을 살려 얻는 이익)가 청산가치(기업을 해체해 얻는 이익)의 2배라는 회계법인의 실사보고서를 놓고도 "회계법인이 확인서를 써 주면 지원하겠다"고 버티는 일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채권단이 결국 쌍용건설 워크아웃에 합의하는 쪽으로 돌아선 이유는 오로지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금융당국은 시공능력 13위에 1천400개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쌍용건설이 무너질 경우 엄청난 파문이 우려된다는 논리로 채권단의 지원을 거듭 종용했다.

이를 두고 채권단 일각에선 정권 초기라는 점을 의식한 금융당국이 '관치(官治) 구조조정'을 한다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러나 "예전과 달리 당국이 나서서 지원을 압박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며 "당국은 큰 틀에서 상황을 설명할 뿐이지 지원은 어디까지나 채권단 자율로 정한다"고 말했다.

◇쌍용건설 이미 상처투성이…'워크아웃 회의론'도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정부의 공적자금을 회수한 지난 2월부터 본격화한 쌍용건설의 고난은 주요 채권은행이 워크아웃에 동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일단락될 것으로 전망된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워크아웃이 난항을 거듭할 때마다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며 "하루빨리 해외 수주를 따내고 기업을 정상화해 채권단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채권단 내에선 쌍용건설 워크아웃에 '억지 춘향' 식으로 끌려 들어간다는 분위기가 여전해 안심하기는 이르다. 오는 13일 워크아웃 동의 여부를 정하는 신한은행의 경우 '대세'에 따라 동의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실무진에서는 워크아웃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쌍용건설 역시 워크아웃이 오랜 기간 지연되는 탓에 대규모 해외 수주가 불발되는 등 이미 피해가 현실화했다. 2억달러와 6억3천만달러 규모인 싱가포르 복합건축 공사 2건은 쌍용건설이 재무개선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각각 수주에 실패했거나 실패가 확실시된다.

금융권에서는 업계의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에 무작정 워크아웃을 밀어붙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견해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주요 채권은행들이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면서 서로 눈치만 보게 되고,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한 기업만 '골병'이 든다는 것이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쌍용건설 채권은행들은 마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누가 먼저 손을 들고 지원하겠다고 나설지 물밑으로 의사를 타진하느라 바빴다"며 "금융당국도 전면에서 워크아웃을 주도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아예 뒷짐을 지고 뒤로 빠져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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