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첫 비핵화 천명…中과 조율된 제의 가능성

북한이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지 5일 만에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밝히며 미국에 고위급회담을 제안해 그 의도가 주목된다.

북한의 이번 제의는 헌법상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의 대변인 중대담화 형식으로 나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의지가 담겼음을 분명히 했다.

또 북미대화를 제의하면서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핵 없는 세계건설 문제 등 한반도에서 북미간 현안을 의제로 제시하고 포괄적 논의가 가능한 '고위급 회담' 형식을 제의했다.

과거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과 조명록 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방미를 통해 수교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재연해 보려는 속내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번에 제의한 북미대화의 의제와 급으로 미뤄 북한은 한반도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여기에다 지난 2월 제3차 핵실험 이후 핵 무력과 경제 발전 병진 노선을 명확히한 북한이 비핵화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으로 명시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김정은 체제에서 처음으로 나온 한반도 비핵화 입장이자, 북한이 비핵화를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으로 밝힌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이번 담화에서 세계적 차원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와 핵위협 해소를 주장한 것은 입장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유인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해 노벨평화상을 받는 요인이 되는 '핵 없는 세계 건설'까지 언급한 것도 주목된다.

북한의 이번 제안은 물론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의 중국 방문과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관련국들과 대화를 하겠다는 밝힌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미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회담 제의가 나왔다는 점에서 북중간에 조율된 입장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는 논리를 북한이 수용하고 있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가 집중 논의된 만큼 이번 회담 제의가 중국측 입장을 전달받고 나온 것일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도 숙고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다 이번 북한의 전격적인 북미 고위급회담 제의는 남한 정부를 압박하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북미회담 제의에 앞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의 특별담화문으로 남측에 당국회담을 제의하고 실무접촉까지 가졌지만 수석대표의 급을 놓고 대립하다 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과 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 우리 정부가 회담에 나서도록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효과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북한의 제안을 미국 정부가 수용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2월 북미간 제3차 고위급 회담 합의사항인 '2·29합의'가 같은해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이행이 무산된 후 미국 정부의 대북 불신이 여전하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 15일 "미국은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인 북한 핵프로그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원한다"면서 "진정성있고 신뢰할 수 있는 대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진지하고 의미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거듭 촉구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이번 회담 제의는 미국의 거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에 '보여주기용'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중국에 '우리는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관련국들이 거부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중국 정부의 이해를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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