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 인선,외통수 맞은 형국에서 묘수(妙手) 찾아야~

물갈이가 본격화될 거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공공기관의 눈은 청와대에 쏠리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주 공모 중인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관치(官治) 논란 소지가 있는 곳의 인선을 중단하고 후보자군(群)을 넓혀서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총체적으로 위기의 공기업을 정상화하려면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심정으로 추진할 인물을 뽑아야 한다

이번 인선의 중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공공기관장의 인선을 바라보면서 금융기관 수장(首長)에 기획재정부 출신 ‘모피아’들이 잇달아 임명된 데 이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에도 관료 출신이 속속 내정된 점들이 문제점으로 나타났기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명박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고 ‘MB맨'들을 퇴진 시켰다. 금융계 ‘4대 천왕’을 물갈이 시키고 임기가 남아 있던 강만수 KDB산은금융지주 회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을 솎아냈다.

금융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 사장에 정창수 전 국토해양부 1차관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에 이재영 전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이 임명됐고,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에는 변종립 전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정책관이 결정됐다.

 한국거래소나 한국관광공사 등에 업무와 전혀 무관한 경력을 가진 정치인 출신 인사의 내정설이 도는 것은 낙하산의 위력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다.한 재계 인사는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청와대가 대통령선거 캠프 출신을 내려보내지 않자 무주공산(無主空山)인 자리를 관료들이 독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결국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형국이다.

어찌되었던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인선 작업을 잠정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환영할 일이다. “낙하산 인사는 하지 않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있었던 공공기관장 인사를 보면 특정 부처 출신들이 자리를 독차지했던 게 사실이다.

이달에 선임된 주요 금융기관 CEO만 해도 모피아(Mofia: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로로 재무부 출신 관료를 일컫는 말) 일색이다. 국회 정무위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임명된 25명의 금융공공기관 CEO의 68%가 모피아 출신이라고 한다.‘신관치(官治)금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정부가 18일 2012년도 공공기관장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 대상은 111개 공공기관의 기관장 96명과 감사 58명이다. 낙제점을 받은 기관장은 18명이었다. 해임건의 대상인 E등급은 2명, 경고 대상인 D등급은 16명이다. 경질이 예상되는 일부 C등급(보통) 기관장과 임기가 끝났거나 사퇴한 기관장을 합치면 물갈이 폭은 예상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낙제 평가를 받은 기관장이 물러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기관장 인사가 주목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금융기관장과 공기업 경영진 인사에서 구태의 낙하산·관치인사 논란이 또 벌어지고 있어서다. 경제관료, 일반관료 할 것 없이 고위공무원 출신이 대거 자리를 꿰차고 앉으면서 ‘관료공화국’이란 비아냥이 터진 자루처럼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좋은 관치’를 말하니 ‘낙하산 백년하청’의 의구심을 갖게 된다.

정부의 경영평가 결과 각종 비리 등 경영능력 부족으로 낙제점을 받은 공공기관장이 96개 기관장 가운데 18명(18.75%)이나 됐다. 5명 중 1명꼴이다. 특히 박윤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과 김현태 대한석탄공사 사장 등 공공기관장 2명은 해임 대상에 올랐다. 낙제점을 받은 곳이 대폭 늘어남에 따라 공공기관장의 대규모 물갈이가 예상된다.

E등급의 경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박윤원 원장과 대한석탄공사 김현태 사장이 불명예를 안았다. 박 원장은 원전안전 문제가 잇따라 발생했음에도 해외사업을 추진하는 등 안전확보 노력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 사장은 8000억 원 규모의 자본잠식 상태임에도 부채 관련 개선 노력이 전개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임명권자에게 이들의 해임을 건의했다.

D등급을 받은 기관장은 잇단 원전사고와 비리 등의 문제를 일으킨 한국수력원자력과 여수광양항만공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에너지관리공단 등에서 나왔다. 정부는 이들 16명의 기관장들에게 경고조치를 내릴 계획이다.

기관 평가에선 부산지역 공공기관들의 점수가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부산항만공사는 B등급에서 C등급, 한국거래소는 B등급에서 D등급,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은 D등급에서 E등급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E등급을 받았던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은 올해 A등급으로 급상승했다.

평가 대상 111개 기관을 보면 A등급 16곳(14.4%), B등급 40곳(36%), C등급 39곳(35.1%), D등급 9곳(8.1%), E등급 7곳(6.3%) 등으로 나타났다. A등급은 인천항만공사와 한국공항공사 등이 포함됐다. 

이번에 등급 A~C를 받은 기관에는 평가 결과에 따라 월 기본급 0~300%의 성과급(경영평가급)이 차등 지급된다. D나 E등급을 받은 기관ㆍ기관장ㆍ감사에게는 성과급이 원칙적으로 지급되지 않는다.

낙하산 인사를 단칼에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낙하산을 솎아낸 자리에 또 다른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박근혜정부는 공공기관장의 인선 기준으로 ‘국정 철학’과 ‘전문성’을 내세웠다. 국무위원이 아닌 공공기관장에 대해 ‘국정 철학’을 요구하는 것은 낙하산을 내려보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공공기관장 인사는 능력과 전문성을 더 중시해야한다. 이번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청와대가 외통수를 맞은 형국에서 묘수(妙手)를 찾아냈다는 평가를 받기를 기대해본다.

말도많고 탈도많은 공공기관장 인선은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뿌리뽑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인물’을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28개 주요 공기업만 따져도 부채총액은 지난해 말 392조9000억원이라는 보고다.이 수치는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공기업을 개혁하라고 내려보낸 인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할 상황임에도 위기의식은 안중에도 없고 빚을 늘리고 요금만 올려 자신들의 배만불린 결과다. 우리 옛 조상들은 청신못차리는 인사에게는 호된 회초리로 잘못을 다짐받았다. 회초리가 그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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