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조세회피처의 한곳인 싱가포르와의 조세조약 개정안이 오는 28일 발효되면서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 '블루아도니스'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의 유입 여부가 드러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싱가포르와의 조세조약 개정이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영향이 크다.

개정되는 조세조약은 자국법을 이유로 상대국으로의 금융정보 제공을 제한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세청이 싱가포르 세무 당국에 재국씨의 계좌 정보를 요청해서 관련 정보를 받을 길이 열린 셈이다.

재국씨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2004년은 그의 동생 재용씨에 대한 검찰의 조세포탈 수사에서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73억원이 재용씨에게로 흘러간 것으로 드러났을 때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본격화한 시점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으로 나타난 만큼 비자금 은닉을 위해 유령회사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한 것이다.

지난 18일 국세청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 등은 조세조약 개정 이후 싱가포르에 재국씨의 계좌정보를 요청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명시적으로 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과거에) 그런 시도를 해 본 사례가 있지만 조약 발효 이전에는 협조가 안된다"고 밝혀 조약 발효 이후 계좌정보 요청 가능성을 열어뒀다.

국세청 관계자들도 조세조약 개정 이후 계좌정보 요청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약이 개정된다고 해도 실무 차원에서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계좌를 특정하고, 탈세 연루 여부 등 계좌정보 요청 사유를 분명히 해야 유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만큼 계좌정보 협조가 일사천리로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현재 여러 가지로 검토를 하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일정 요건을 갖춰서 정보 제공을 요청해도 실제 우리 손에 넘어오는 데는 6개월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역외탈세 조사는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신속한 조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함에도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세청은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 및 해외 계좌 설립 문제 등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공개한 유령회사 설립자들을 포함한 역외탈세 조사가 대부분 장기간 소요되는 만큼 '긴 호흡'으로 접근한다는 방침이다.

뉴스타파가 수시로 명단을 발표하면서 역외탈세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국세청의 추적과 세무조사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만큼 일시적 이벤트나 폭로성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변에서 불거져 나오는 의혹들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탈세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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