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사면초가 신세다. 날만 새면 나오는 뉴스의 초점이 오직 ‘국정원’ 뿐이니 이제는 듣기에도 신물이 난다. 국정원 문제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터져 나온 얘기다.

국정원 직원 한 사람의 내부자 고발로 촉발된 이른바 인터넷 댓글 사건이다. 국정원 심리전략국에 근무하는 여직원 하나가 자기의 집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많은 댓글을 달았는데 그 중에서 여당 대선후보에게 유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이었다. 야당 당직자들이 그 집에 몰려가 며칠 동안 나오지도 못하게 사실상 감금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경찰이 개입했고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담당자에게 서울시경청장이 축소압력을 행사했다는 또 다른 내부 고발로 일은 더욱 시끄럽게 번졌다. 이 사건은 선거가 끝난 후 댓글을 달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로 원세훈 전국정원장이 기소되고 수사 담당자에게 축소를 지시했다는 전 서울시경청장 김용판도 기소되는 선에서 일단 형사처리는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야당인 민주당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장외투쟁으로 확전하고 있으며 촛불집회도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동안 잠잠하던 대학가의 움직임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특히 대학생 여론조사의 결과만 본다면 61%가 국정원 사태에 대한 서명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과거처럼 독재가 판치는 세상도 아니고, 언론의 자유도 넘쳐나고 있어 자기 하고 싶은 말은 아무데서나 하게 되어 있으니 일인시위를 하던, 장외집회를 하던 그것은 본인들의 뜻 대로다.

다만 나라를 걱정해서 하는 일이라면 때와 장소는 가려가면서 합법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쌍용차 문제로 일년이 넘도록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이는 덕수궁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민의 눈 밖에 난일이었다. 구청에서 철거를 강행하고 그 자리에 커다란 화단을 만들어 놨어도 그에 잇대어 의자를 깔고 농성을 하는 모양은 이게 법치의 나라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국정원에 대한 규탄집회도 야당이 국회의원 중심으로 하다보면 일반당원으로 번져나가고 시민과 학생이 합세하는 모양새로 확대될 것을 기대하고 있겠지만 과거와는 다를 것으로 예측된다. 우선 댓글 문제에 대해서는 검찰의 날카로운 수사를 통하여 당시의 국정원장과 서울시경청장이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법무부장관과 마찰을 빚어가면서까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를 추가했기에 이제는 재판과정에서 어떻게 유죄를 입증해내느냐 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일만 남았다. 국정원장이 여당후보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댓글을 달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는 당연히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있느냐 하는데 있다.

독재정권이 저질렀던 관권이 개입한 부정선거운동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자유로이 의견을 발표한 것으로 보느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재판부의 몫이다. 국민들은 이를 지켜볼 뿐이다. 명백히 부정선거운동으로 판단된다면 일반 국민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혐의만으로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터져 나온 게 NLL사건이다. 이 문제도 대선 과정에서 파장을 일으켰던 것을 재연(再演)시킨 일이다. 노무현대통령이 북한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 그가 NLL에 대해서 부정적인 발언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은 대선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없는 이슈는 아니었다. 노무현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이 박근혜 여당후보의 대항마로 나왔기 때문이다.

자칫 문재인은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민감한 사항이었다. 여당의원이 이를 제기했으나 국정원과 여당후보가 모두 이를 덮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진척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회에서 말썽이 재연되었다. 야당인 법사위원장이 여당출신 정보위원장을 고소하는 초유의 사태가 생기며 급기야 문제의 NLL기록은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NLL은 모든 국민이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해양경계선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육지의 DMZ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남북이 모두 이를 인정하고 휴전 이후 지금까지 잘 지켜오고 있다. 이 문제는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없애라 마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을 지키고, 나라를 지켜내는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통일의 그 날이 오면 저절로 없어지는 경계선이다.

노무현이 모처럼 정상회담에 나갔다가 헛된 망상에 빠지지 않았다면 NLL을 폐지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이번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차마 듣기 어려운 부끄러운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대통령의 안보 인식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았나 의심하게 된다.

문제는 이를 공개하지 못하게 온갖 핍박을 가한 야당의 심사다. 노무현의 심복들이 많은 정당이라고 하지만 그는 이미 역사가 된 사람이다. 재임 중 잘못한 대목이 있다면 오히려 자진 공개하여 잔가지를 잘라내는 것이 발전의 기초가 된다. 괜히 안고 있다고 공개되지 않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노무현 자신이 대통령 기록물로 하지 말고 공공기록물로 후임 대통령들이 널리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고 하지 않는가. 곪은 상처는 도려내고 새로운 길을 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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