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性문화, 계약서로 이루어지는 세상 씁쓸..

성문화 지도가 바뀌고 있다. 최근 온라인상에 낯뜨거운 계약서 한 장이 등장해 포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 보니‘남녀 계약 당사자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으며 서로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기된 ‘성관계 표준 계약서’다. 실로 충격적이다.

지난달 부터 성폭력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됐다. 그동안 강력한 성범죄 처단을 어렵게 했던 큰 걸림돌 하나를 제거했다는 의미다. 한쪽에서는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법망을 피해가려는 별의별 방법을 다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성관계 표준 계약서’가 나도는 등 성문화의 왜곡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실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더욱이 이 성관계 계약서가 모든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남성의 비뚤어진 성 의식을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성폭력 처벌 강화를 대놓고 조롱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포털을 달구고있는 성폭력표준계약서는 지난달 1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성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이 엄격해지자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성관계 당사자 외에 제 3자가 고발해도 수사기관이 인지수사에 착수해 성범죄자 처벌이 가능해진 데 대한 반발이다. 

개정된 성폭력 처벌법에서는 피해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와 재판이 가능했다. 그러나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 고소 없이도 수사기관이 수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유사강간죄 조항이 신설돼 피해자의 구강, 항문 등에 성기를 넣거나 신체의 일부에 도구를 집어넣는 경우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성관계 표준 계약서는 강화된 성폭력 처벌 관련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꼼수'이기도 하다.

이처럼 성폭력 처벌법이 강화 돼면서 문제의 성관계 표준 계약서는 최근 친고죄 폐지 등 성폭력 관련 처벌이 강화되면서 등장했다. 출처와 만든이가 불분명한 이 계약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 계약서에 깔려있는 성 의식은 전적으로 남성들의 성적 본능을 당연시하면서 여성들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강화된 성폭력 관련법의 조항, 조항을 빗대어 성폭력 처벌법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출처를 알수없는 성관계 표준 계약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요·협박·약취·유인·매매춘 등의 사실이 없음] [상호 민·형사상 성인임을 고지했음] [임신을 해도 남자 측에 책임을 묻지 않음] [사진촬영, 녹음, 동영상 촬영 등의 행위를 일절 하지 않음] [일회성 만남을 원칙으로 하고 결혼·약혼 등을 약속한 사실이 없음] [성관계 사실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지 않음] 등 총 9개 조항이 담겨 있다. 또 ‘이를 어길 시 모든 민·형사 소송에 면책권을 갖고 1억원을 배상한다’는 항목도 포함돼 있어 계약서가 구체적이고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되자 네티즌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 20대 여성 누리꾼은 “사랑해서 성관계를 하는 게 아니라 성관계를 갖기위한 남녀의 합의서라니… 요즘 젊은이들의 문란한 성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성 범죄자가“성폭행 전에 강제로 계약서를 들이밀어 사인을 요구할 지 어떻게 아나. 정욕을 위해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계약서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부 남성 네티즌은 “합의하에 성관계를 해도 강간범으로 몰리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성관계 후 태도가 돌변해 돈을 요구하는 악질적인 꽃뱀을 근절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계약서가 법적 효력을 얻으려면 서로 내용에 동의하는 사인을 한 뒤 공증을 해야한다. 문제는 공증 처리를 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수사에서 계약서의 법적 효력은 강압이나 위계 여부 등을 따져 결정하게 된다.

계약서의 법적 효력도 논란이다. 강성두 변호사는 “수사 단계에서 증거물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강압이나 위계 여부 등을 두루 따져봐야 하는 만큼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남녀가 합의하에 작성한 계약서인 만큼 효력을 인정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아무리 법을 강화하고 강력한 처벌을 한다 해도 근본적인 성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성적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성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의지는 전과자를 늘리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성범죄를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의 성문제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과 성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성문화 인식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는 바른 성문화 정착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직접 조사하고, 시행 제도의 효과와 피해 사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개선책을 마련한다면 성 의식 개선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에서 돌고있는 출처가 불분명한 성관계 계약서의 아니라 우리국민들 스스로가 성숙한 성문화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범죄가 늘고있는 현실에서 어떤죄보다 더 강력하게 성범죄자들을 처벌할수있는 관련 법과 규정이 새로 만들어 지긴 했지만 한번더 보완을 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성은 결코 계약서를 작성해서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다.

먼저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출처가 불분명한 계약서를 올려 사회의 도덕성을 어지럽힌 원인 제공자를 찾아내 법으로 철저하게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만인앞에 성은 고귀한 것이며 함부로 대하는 물건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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