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지주가 농협중앙회로부터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중앙회의 '족쇄'가 여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앙회가 지분을 100% 가진 유일한 대주주라는 점을 감안해도 경영 간섭과 제약이 지나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손자회사인 농협은행이 부당한 특혜 금리로 중앙회에 자금을 대준 사실이 감독당국으로부터 지적받기도 했다.

은행 등 농협금융의 계열사들은 수익성이 좋든 나쁘든 농협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명목으로 매년 거금을 중앙회에 '상납'한다.

중앙회 조합장들이 금융 계열사의 고위직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금융권에서는 농협금융이 앞으로 민간 금융회사와 경쟁하려면 농협의 특수성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금융회사로서 갖춰야 할 보편성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 금융계열사, 중앙회 뒷바라지에 '진땀' 농협은행 등 농협의 금융계열사들은 중앙회로부터 '돈 잘 버는 작은아들'로 인식되곤 한다.

금융 계열사들이 벌어온 돈은 '큰아들(경제사업지주)'의 사업 뒷바라지에 쓰인다.

금융계열사들이 분기마다 '브랜드 사용료'로 매출액의 최대 2.5%를 중앙회에 넘기고 중앙회는 이 수입으로 농촌 지원, 농축산품 매입 등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메우는 구조다.

이렇게 지급한 브랜드 사용료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5천485억원이다.

이 기간 농협금융의 순이익은 6천64억원이다.

농협이라는 간판을 쓰는 데 드는 비용이 순이익 전체와 비슷한 규모다..

저금리 장기화와 STX 그룹의 부실 등으로 수익성은 갈수록 나빠지는 농협금융은 적자가 나도 브랜드 사용료를 내야 한다.

신동규 전 농협금융 회장은 이를 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중앙회와 마찰을 빚은 끝에 스스로 물러났다.

최근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농협은행이 지적받은 중앙회에 대한 부당 대출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금감원은 농협은행이 중앙회에 부족 자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정상적인 수준보다 적게 받았다고 17일 밝혔다.

일각에서는 농협금융의 가장 큰 폐단이 이런 금전적인 문제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중앙회의 인사 개입이 농협금융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중앙회의 주주총회 구실을 하는 대의원 조합장은 291명이다.

이들은 중앙회장에 대한 선출권을 갖고 있으며, 총선이나 대선 때 지역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들보다 더 막강한 18명의 이사 조합장은 농협금융과 계열사의 임원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 조합장의 지원을 받아야 임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의 특성상 이사·대의원 조합장들이 힘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능력보다는 이들과의 친소관계나 조합별 지역 안배 등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효율성은 뒷전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농협금융 지배구조 여전히 불안…법적 미비점도" 그러나 농협 내부에서는 현재의 운영 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적 개선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브랜드 사용료의 경우 농협금융의 태생적인 한계이며, 이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임종룡 신임 농협금융 회장도 중앙회는 지분을 100% 보유한 대주주이고, 농협의 공공적인 성격을 고려하면 브랜드 사용료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브랜드 사용료의 요율 조정을 중앙회에 요청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용료 부담을 뛰어넘는 실적을 내자는 게 임 회장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금감원 검사에서 적발된 부당대출에 대해서도 농협은행 내부에서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신경분리 전부터 중앙회와 일상적으로 해온 당좌거래인데, 이를 마치 특혜성 대출인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앙회가 은행 내규나 법에 '공공기관'으로 명시되지 않았는데도 공공기관으로 여겨 낮은 금리로 대출했다는 금감원의 지적에 농협은행 관계자는 "은행연합회가 대출 건전성을 분류할 때 따르도록 한 목록에는 중앙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다"며 "금감원도 연합회의 분류 기준을 지키도록 권고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금감원은 농협은행이 대출금리를 부당하게 낮게 매겼다고 했지만, 굳이 공공기관으로 취급하지 않고 대출해도 신용등급 1등급인 중앙회는 연 4.51%의 낮은 금리가 적용됐을 것"이라며 "오히려 '내부거래' 논란 소지를 의식해 금리를 5.27%로 높게 매긴 측면이 있다"고 항변했다.

다만 농협금융의 지배구조가 아직 안착하지 못한 점과 중앙회가 인사 등에 부적절하게 개입하는 폐단이 문제라는 지적은 농협금융 안팎에서 대부분 공감을 얻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경분리를 한 이상 농협금융도 다른 민간 금융회사와 무한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의 지배구조는 불안정한 게 사실"이라며 "농협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의 상충 여지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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