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의원 장남 기선씨 부장 복귀..오너십 안착까지 첩첩난관

▲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매킨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세대까지 생존하는 가족 기업은 전체의 30% 정도며, 3세대에는 고작 14%만이 살아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기선(31)씨가 지난달 현대중공업에 복귀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던 기선씨가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뒤 회사에 복귀했다"고 밝혔다.

정기선씨는 대일외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군에 입대해 2007년 육군 중위로 제대했다.

그런 다음 2007년 10월부터 2008년 9월까지 신문사에서 인터기자로 활동했다. 2009년 1월부터는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해 6개월간 근무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스탠포드대 MBA과정을 밟은 정기선씨는 2011년 9월 보스턴컨설팅 그룹에 들어갔다. 이 회사 한국 지사에서 1년 9개월 동안 근무한 그는 올 6월에 퇴사했고, 곧바로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복귀했다.

재계에서는 기선씨의 복귀를, 2002년 정몽준 의원이 회장과 고문직에서 물러난 뒤 유지해 온 전문경영인 체제가 막을 내리고 3세 경영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기선씨는 이번에 부장으로 복귀하면서 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승진과정을 뛰어넘었다. 현대중공업 부장급 연령이 보통 40대 후반이거나 50대 초반이라를 점을 견줘 볼 때 기선씨의 부장 직급은 매우 빠른편이다. 

이런 고속승진은 경영승계의 일반적 수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선씨의 사촌형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39살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21살에 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뒤, 2009년 부사장, 2010년 사장을 거쳐 2012년 말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해 내놓은 '재벌 승계는 어떻게 이뤄지나' 보고서를 보면, 재벌 총수 일가의 평균 입사 나이는 27.9살, 임원 승진은 34살, 사장 승진은 42.2살, 그룹회장 승진은 54.2살로 나타났다.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 등 상위 20대 재벌의 총수 일가 107명을 대상으로 경영권 승계 현황을 조사한 결과다.

문제는 고속승진을 통한 3세 경영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느냐에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재벌 2세가 일반인에 견줘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보니 객관적으로 경영능력을 검증할 수 없어,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전문인 경영체제를 유지해 온 현대중공업 안팎에서는 총수 일가를 견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기선씨의 고속승진 등 이런 저런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현대중공업 체제에서 대리를 끝으로 회사를 떠난 전 직원이 어느날 갑자기 부장'으로 고속 승진한 것은 직원 간 형평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3세 경영이 시작하기도 전에 기업 내부의 갈등으로 조직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매킨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세대까지 생존하는 가족 기업은 전체의 30% 정도며, 3세대에는 고작 14%만이 살아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갈등과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느냐가 경영승계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퍼락, 살충제 레이드 등으로 유명한 미국 SC 존슨은  현재 100년 넘게 5대에 걸쳐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기업의 핵심 가치는 '회사 직원을 가족처럼 소중히 여긴다'이다.

창업자인 새뮤얼 존슨은 '직원들이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 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경영 전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경영에서 물러난 뒤, 다음 세대 경영자들은 이를 그대로 승계, 철저히 지켰다.

실제 1985년 미국 기업 최초로 직원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개설했고, 최근에는 직원들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금요일 오후 회의 금지'라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창업자의 믿음대로 이러한 노력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소통도 오너경영의 성패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독일의 화학 및 제약 기업인 머크(Merck)는 1668년 설립 이래로 300년이 넘도록 한 가문이 이끌고 있다. 현재 기업 경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가족만 해도 10~13대에 걸쳐 200명이 넘는다. 

1년에 두 번씩 15~20세, 21~30세 그룹으로 나눠 정기적 교육을 진행한다. 사무실, 공장 등으로 현장 견학을 하며 기업 실무를 직접 경험하고 훈련받는다.

가장 중요한 '세대 간 대화' 세션을 통해 온 가족이 모여 기업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갖는다.

이런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을 통해 머크가의 후손은 자연스럽게 '가문보다 기업이 최우선'이라는 창업자의 가치관을 익히게 된다.

가족 내부의 갈등 관리도 중요하다.

굴 소스로 유명한 중국의 가족 기업 이금기(李錦記)는 3대 회장인 리만탓(李文達)과 그의 동생 사이에서 회사 지분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가족 헌장을 만들었다.

형제간의 싸움은 리만탓이 지분을 100% 갖는 것으로 일단락이 났지만, 이후 그는 이런 소모적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강력한 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창업자의 핵심 가치인 '실용성, 명성, 탐구 정신'을 유지하고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만드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가족 헌장이다.

여기에는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 언급돼 있는데 '대학 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기본적 내용부터 '누구든 한 아내와 한 가정만 가져야 한다' '이혼하는 경우 가족 이사회에서 제외된다'처럼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정해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리만탓은 이금기를 전 세계 80개국에 200여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약 380년 동안 창업자 가문이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식품 회사 '깃코만'도 비슷한 사례다.

현재 세계에서 아주 유명한 간장 브랜드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는 이 회사는 1900년대 초 기업 역사가 300년으로 접어들면서 위기를 맞았다.

기업 내 여러 계파의 가족이 서로 권력 분쟁을 일으켜 갈등이 심각해진 것이다.

이에 깃코만은 1917년, 위기 상황을 해결하고자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가족 교서(敎書)'를 채택한다. '가족의 화합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기업의 번영과 가족의 재산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한다' 등 총 17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는 이 교서는 창업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현재까지도 모든 기업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200년 이상 된 세계 각국의 가족 기업 경영자 친목 모임인 '레 제노키앙(Les Henokiens)'은 '후손이 창업자의 가치관을 꾸준히 지키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장수 비결로 꼽았다.

교육이나 특별한 훈련을 하는 것보다 가치관 승계를 제대로 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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