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의 진을 친 적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지혜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증인문제로 시작되었던 민주당의 장외 투쟁이 진보세력과 연대하여 촛불시위로 번지면서 투쟁방향을 세금투쟁까지 포함하여 '투트랙'으로 확대되어가는 모양세다.

김 대표는 정부와 새누리당에 맞서 7월 31일 '장외투쟁'이란 최후의 정치적 승부수를 꺼내들고 둥지에서 뛰어나와 장외투쟁을 전면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위기의 민주당은  '김한길 취임 100일'째를 기점으로 여당과 청와대를 향한 투쟁 강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배경에는 NLL 정국에서 민주당이 사실상 새누리당에 주도권을 내준 상황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마저 유야무야 될 경우 김 대표의 리더십은 물론 선명 야당을 자처한 민주당의 존립자체의 근간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전략부재·강경파에 휘둘리는 허약한 리더십이란 비판에 직면해 있던 김한길 대표가 장외투쟁 정국을 어떤식으로 이끌어 갈지 관심이 가는 이유다.

정당이 장외투쟁이 갖는 의미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명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면 정당은 소기의 성과를 관철시킬수 있고 이전보다 당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지도부의 령이 서는 것은 물론 정국 주도권을 가져오는 다다익선의 효과를 꾀할 수 있다.

과거 8년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던 당시에도 그러했고 이후 한나라당은 선거에서도 연승을 이어가게 된다.  과정에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론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득권 세력인 여당을 압박하는 것이 장외투쟁의 최상의 시나리오다. 반면 아무런 성과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 대안없는 '몽니'로 비춰질 경우 개혁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출구전략 마련도 여의치 않게 된다면 정당으로서는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오명'의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양날의 검' 장외투쟁 통한 벼랑끝 승부수가 갖는의미는 민주당과 김한길 대표의 정치생명과 무관하지 않다.

8월 11일로 대표 취임 100일을 맞는 민주당과 김한길 대표가 그 기로에 서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시청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민과 중산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고 스스로 후한 점수를 주었다. 당 소속 의원들에게는 비상대기령을 소집한 상태이며 투쟁 전선을 전국적으로 화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서울광장에서 갖은 민주당 첫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은 국조 기간 45일 중 30일을 파행시켰다. 3번 파행과 20여일간의 국조 중단, 증인채택을 거부하고도 국조 정상화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며 "무엇이 두려워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증언대에 세우지 못하는지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당은 앞으로 무너진 민주주의 회복하고 국정원 개혁 이루겠다. 이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민주당이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김 대표는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1야당이 또다시 '거리 정치'에 나선다는 비판적 시선을 감안, 원내외 병행 투쟁임을 강조하고 있다.   

3일에는 현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으로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제의했다. 김 대표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 및 국정원 개혁 촉구 국민보고대회'에서 "엄중한 상황에 처한 정국을 풀기 위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상황타개를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영수회담을 공식제안했다. 

김 대표는 "지난 대선기간을 전후에 몇 달 동안 엄청난 국기문란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 하나하나가 수십년간 없었던 헌정파괴 행위였다"면서 "국정원 개혁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를 국민앞에 천명해야 한다. 사과할일이 있으면 국민앞에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고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김 대표의 영수회담을  5자회동으로 격하시켜 역제안한 하면서 정국은 더욱 급랭한 상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야당 무시이자 사태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5자회동 당사자들에게도 사전에 아무런 연락이 없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에 민주당은 더욱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 "야당대표 시절에는 대통령과 단둘이 만나 영수회담 하는게 원칙이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야당대표와 양자회동은 안된다는게 원칙이라면 국민들은 세상에 뭐 이런 원칙이 다 있는가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며 "야당대표때 다르고 대선후보때 다르고 대통령 되고나서 다른 원칙과 약속에 대해 국민들은 크게 실망하고 분노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의 1차 분수령은 향후 있을 시민들의 참여확대의 가속도와 원세훈·김용판 증인을 통해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구체적 의혹을 끄집어 낼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민주당이 요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원 개혁안 마련 등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장외투쟁은 더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9일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회복에 나선 국민과 민주당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집권세력간의 민주주의의 운명을 건 한판승부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제는 1954명 언론인들이 국정원 국기문란사건에 대한 보도통제에 맞서 싸우겠다고 시국선언했다. 진실은 가리려 해도 결코 가려지지 않는다. 국민은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며 "청와대와 새누리당만이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같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박근혜 정부가 민주주의 역행에 이어 이제는 민생회복과 경제민주화를 열망하는 서민과 중산층의 요구를 외면하는 민생역행의 길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말했다.

8일 발표된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선 '월급쟁이에 대한 세금폭탄'으로 규정하고 이번 개편안의 최대 피해자는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인 반면, 최대 수혜자는 재벌과 부유층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장병완 정책위의장을 위원장으로 '중산층과 서민 세금폭탄 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기획재정위원회·예산결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주축으로 삼아 '세금폭탄 저지운동'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후보시절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공약의 맨 앞에 내세워서 대통령에 당선됐다"며 "그런데 8일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은 대기업과 부유층은 그대로 놔둔채 월급쟁이 호주머니속 유리지갑만 털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새누리당은 "무책임한 구태정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야권 핵심 관계자는 "당장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정치권은 여론의 흐름에 민감할 수 밖에 형국이다"며 "박 대통령이 국정원 사태에 대해 이미 '어떤 도움도 받은 바 없다'고 선을 그은 상황에서 사과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가운데, 야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표명과 장외투쟁 회군의 명분을 쥐고 있는 여야간 협상 전략이 맞물려 정치권의 수싸움은 더욱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의 장외투쟁 지지도는 30%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는 다시 말해 명분이 약하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장외투쟁을 계속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바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싸우더라도 장내로 들어와 투쟁하라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촛불집회에서는 아슬아슬한 발언도 나왔다. 야당이 주도한 집회는 아니지만 '한 묶음'으로 비칠 만하다. 가장 노심초사하고 있는 대선불복성 구호도 나왔다. 사회자가 행사 말미에 "관권 부정선거, 대통령이 책임져라"라고 외쳐댔다. 일부 시민은 '부정선거 원천무효' '박근혜 물러가라·하야하라' 등의 과격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발언은 민주당에도 이로울 리 없다. 오히려 국민적 반감만 부를 성싶다. 야당이 촛불집회에 동참할수록 발언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야당도 원하는 방향은 아닐 게다.

민주당이 민생에 쏟아야 할 힘을 촛불집회에 동원하는 것은 제 살 깎기나 다름 없다. 전국 지구당별로 총동원령을 내렸다고 한다. 국정원 댓글 의혹 국정조사 등 원내에서 할 일이 많다. 예·결산안 심사도 해야 한다.

취임 100일째를 맞은 김한길 대표는 11일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 장외투쟁 장기화를 시사했다. 그러나 정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시작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끝내기는 쉽지 않다. 눈앞에있는 숲만 보아서는 안된다. 숲뒤에 가려진 태산을 보지 못한다면 더이상 앞으로 나갈수 없다.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만 보고 지지를 받는 양 착각하는 민주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당과 정부도 한발 물러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줄 알아야 한다. 김 대표는 계파색이 엷고 당내에 자기 사람이 비교적 없는 편이다. 합리적 의회주의자로 통한다. 그런 김 대표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당내에서 대표가 휘둘리면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할 수 없다. 김 대표도 이제는 본인의 의지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하고 더 이상 당내의 강경파에 이끌려 가는 모양세를 보여서는 안된다. 가능한 장외투쟁은 길게가지않고 빨리 접을수록 당과 김대표에게 유리하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다간 시기를 놓친다. 명심해야 할 터다.

여당과 청와대도 조만간 김 대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야당을 몰아붙인다고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병법에도 배수의 진을 치고있는 적들에게 퇴로를 열어주기도 한다.  정치는 여당 혼자만 할 수 없다. 영수회담이든, 3자회담이든, 5자회담이든 얼굴을 마주보고 해법을 찾는 것이 최고의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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