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主, 국정원 국정조사서 시종일관 무기력

▲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려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직원들이 커튼가림막 뒤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체성은 잘못된 점을 폭로하는 문제제기형 정당에 가깝다.

해방 후 한민당에서 현재의 민주당까지 민주 개혁 진영은 엄혹한 독재 시대를 거치며 성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공포정치에 저항하고 투쟁하며 언론 등이 제기하지 못한 권력의 부당함과 섬뜩함을 폭로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도입을 추동하는 하나의 동력으로 작동했고, 독재를 무너뜨리는데 기여했다. 그러면서 문제제기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떠받치는 하나의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야성(野性)회복 요구에 등떠밀려 의회를 뛰쳐나와 광장에서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그들을 보라.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장외투쟁→국민여론 환기→여당과의 협상 유리하게 끌기로 이어지는 과거의 야당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그렇다고 문제제기형 혹은 투쟁형 모델이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열린 국정조사에서 시종일관 무기력한 민주당이 그랬다.

민주당 소속 국조특위 위원들은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나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결국 기존 검찰 수사 결과와 언론 보도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보수집과 분석 역량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집요하고 논리적인 추궁을 통해 증인에게서 뜻밖의 진술을 받아낼 수 있는 집요하고 논리적 추궁도 없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부인하고 나서는 김용판 전 청장이나 원세훈 전 원장의 방어논리를 효과적으로 반박하거나 깨뜨리지 못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할 수 있는 건 증인 선서 거부와 답변 태도를 문제 삼고 훈계하는 것 뿐이었다. 이들은 질문 순서가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치졸한 태도다" "비겁하다"며 호통치는데 시간을 썼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전략 부재, 정보 부재, 방향성 부재의 삼위일체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원세훈·김용판 증인이 청문회를 자신의 변론장으로 활용할 정도로 효율적 대응 전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며 "또 기존 의혹이나 언론보도 이상의 것이 딱히 제시되지도 못했고, 국정조사에 당력을 집중하지 못한 채 다른 이슈에 관심을 돌리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번 국조에 대해 "얻은 게 없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여야의 국조 합의가 7월 초였는데 '강성 저격수'들로 이름난 특위 위원들이 여태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당내의 이런 평가는 곧바로 만회론으로 이어진다. 특검 등을 통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를 좀더 파헤쳐 소득없이 끝난 국조로 손상된 야당의 체면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일단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 대사 증인 채택에 다시 다걸기(올인)할 태세다.

특위 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 의원은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10시간 전 수사 결과를 알고 기자들에게 이야기했고, 권 대사는 원 전 원장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놓고 상의한 당사자라고 시인한 만큼 두 사람에 대한 증인 채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박지원 의원 등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특검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를 잘했다고 칭찬하더니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냐"고 면박을 당했다.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장외 투쟁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20일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민생도 무너진다"며 "현재 진행 중인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민운동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8월 결산국회와 관련, 정보위와 안전행안위, 운영위 등 국정원 사건과 관련된 상임위부터 '선별적 결산'에 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강경파 일각에선 결산국회는 물론이고 9월 정기국회에도 성과 없이 들어가선 안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향후 구체적 대응기조를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전직 국정원 직원에게 자리를 약속하고 만들어낸 '실패한 정치공작 사건이라며 역공을 펴고 있다.

이 때문에 결국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간 회동이 막힌 정국을 풀 해법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회동 형식을 두고 청와대는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5자 회담을, 민주당은 대통령과 김한길 대표의 단독 회담을 고수하고 있지만 여야 모두 '만남'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따라서 청와대도 원활한 정국 운영을 위해 타결책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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