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의 사진을 소재로한 가무극…'잃어버린 얼굴'을 찾다

▲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서울예술단 제공    

왜 명성황후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지 않았는가.

사라진 명성황후의 사진을 소재로 한 가무극(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이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2012년 '윤동주, 달을 쏘다'에 이어 창작 가무극 두 번째 작품 '잃어버린 얼굴 1895'를 선보이는 '서울예술단'은 지난해부터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면서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소재를 발굴해 창작가무극의 형식을 고수해오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에 얽힌 논란 중 하나인 초상을 소재로 한다.

사실 명성황후만큼 역사적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도 드물다. 열강에 항거한 '조선의 마지막 국모'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외척 인척 내척 등, 성이 다른 친족 세력의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해 나라를 망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최근 독일과 영국에서 실제 명성황후가 시해되지 않았었다는 내용의 문서가 추가적으로 발견되면서, 그녀의 시해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또다시 재현되고 있는 가운데 이 작품은 봉건의 환경을 뚫고 근대의 주체가 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찾고자 했던 그녀의 '잃어버린 얼굴'을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19세기 후반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팽팽한 대립, 갑신정변 이후 개화파의 몰락, 황후를 제거하려는 을미년 '여우사냥'의 음모를 극에 담는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 했지만 작품은 후대의 상상력이 적극 가미됐다.

하지만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역사적 일대기가 아닌 1930~4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의 낡은 천진사진관을 배경으로 한다.
해방을 맞은 8월 어느 여름날의 사진관, 늙은 사진사 휘가 사진관의 기물을 정리하고 있다. 이 때 한 노인이 조선의 마지막 왕비 명성황후의 사진을 구하러 찾아온다.

이에 휘는 명성황후의 국상일 밤을 회상하면서 왕비와의 인연을 돌아보며 현재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과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극에는 명성황후와 고종, 민영익, 대원군 등 역사적 인물과 함께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궁정 사진사 조수로 극중 화자인 휘와 그의 연인으로 명성황후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무녀 선화, '민비 암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황후의 얼굴 사진을 구하려 애쓰는 일본인 기자 기무치 등이다.

임오군란 중 피난길에 왕비는 휘의 고향집에서 하룻밤 묵어간다. 왕비의 정체를 모르고 내뱉은 몇 마디 말로 인해 휘의 집은 파가저택(破家沮澤)의 형별에 처해지고, 휘의 어미는 매 맞은 장독(杖毒)으로 죽었다. 휘는 복수하기 위해 궁궐촉탁사진사 덴신의 조수로 들어가 왕비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날만을 기다린다.

제국열강의 탐욕과 세도정치의 폐해, 동학란 등으로 어지러운 시절 대원군과 고종 사이에서 조선의 운명이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개화당 젊은이들은 정변을 일으킨다. 민란과 정변의 후유를 안고 개국의 흐름을 주도하던 왕비는 끝내 사진 박기를 거부하는데….

한편 한성순보 기자로 조선에 들어와 있는 일본인 기구치는 신분상승을 꿈꾸며 대본영에 충성을 보일 기회만을 엿본다. 기구치는 조선 왕비를 시해하라는 령을 받고 왕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던 중, 드디어 휘로부터 왕비의 얼굴이 박힌 사진을 구하게 되고… 1985년 을미사변의 밤이 다가오고 있다.

휘는 결국 사진을 넘기지 않았고, 황후의 얼굴을 착각한 시해단이 그의 곁에 있던 무녀의 딸 '선화'를 대신 죽였다는 이야기로 '을미년 명성황후 생존설'을 따르고 있다.

극은 조선이 해방된 뒤 늙은 휘가 황후의 마지막 남은 사진을 불태워 버린다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국내 대표적 여성 극작가인 장성희 씨가 대본과 가사를 쓰고, 한국에서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기법을 가장 잘 활용하는 뮤지컬 연출가로 평가받는 이지나 씨가 연출과 각색을 맡았다.

장성희 작가는 '꿈속의 꿈', '달빛 속으로 가다'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간 명성황후의 영웅적 해석이 아닌 당시 환경 속, 한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삶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한다.

특히 이번 작품 연출은 '광화문연가', '록키호러쇼', '서편제' 등 특색 있고 감각적인 연출로 대한민국 대표 모더니시트 이지나 연출이 맡아서 서울예술단의 대표브랜드 '바람의 나라'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작품으로 신뢰도와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이지나 연출은 당시의 조선 땅에서 한 여인에 대한 똑 같은 평이 없었던 민비의 이야기를 모던하고 파격적인 드라마형식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명성황후 역으로는 뮤지컬 '아이다', '서편제'등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2012 제1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어워드 연기예술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차지연이 맡았다. 또한 국내 최연소 ‘헤드윅’으로 발탁돼 눈길을 모은 배우 손승원과 '윤동주, 달을 쏘다.'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신인 배우 김도빈, 박영수가 함께하는 무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공연은 다음 달 22일부터 29일까지 이어진다.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2시·6시. 가격은 4만-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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