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 검정 통과..대표 집필자 "그동안 떠돌았던 유언비어 거짓임이 입증될 것"

보수 성향 학자들이 집필자로 참여한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검정심의를 최종 통과했다.

교육부의 위탁을 받아 한국사를 비롯해 동아시아사, 세계사, 역사부도 등 고교 역사 관련 교과서 검정 작업을 맡고 있는 국편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검정심의위원회의 최종 심사에서 8종 모두가 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31일 밝혔다.

최종 합격을 받은 이들 교과서는 다음 달 중 각 학교에 전시돼 학교별 채택과정을 거친 뒤 내년 3월부터 일선 고교에서 사용된다.

이들 교과서 중에는 출간되기도 전에 거센 논란에 휩싸였던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도 포함돼 있다. 이 교과서의 필자는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이명희 공주대 교수, 4명의 고교 교사다.

권 교수와 이 교수는 진보진영에서 뉴라이트 계열 단체로 분류하는 한국현대사학회에서 각각 회장을 맡았거나 맡고 있는 인사다.

한국현대사학회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 연구를 지양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한다는 취지 아래 2011년 5월 설립된 학술모임이다.

설립 첫해인 2011년에 역사 교과서의 '민주주의'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역사교과서 논쟁을 일으킨 바 있다.

한국현대사학회는 지난 5월 31일에는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현행 중·고교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한국현대사학회는 기존 교과서가 지나치게 좌편향됐다고 비난한 반면 이 학회 출신 학자들이 집필한 교과서가 지나치게 우편향적인 시각에서 쓰였을 것이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

그러나 최신 역사 교육과정 집필기준은 "일제의 식민통치 방식과 경제수탈 정책의 내용을 파악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할 수 없다.

4·19 혁명이나 5·16 군사 정변, 5·18 민주화운동 역시 집필 기준이 정해져 있다.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심의에서 최종 합격한 것은 이러한 집필 기준을 준수했거나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검정심의 과정에서 걸러졌다는 의미다.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교수 역시 "교과서가 나오면 그동안 우리 교과서에 대해 떠돌았던 유언비어가 그야말로 유언비어지 전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게 명명백백하게 입증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들이 저술한 교과서답게 역사관의 차이는 엿보인다.

국편의 수정 권고에 따라 보완한 내용을 살펴보면 "5·16 군사 정변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로 기술돼 있다.

5·16 군사 정변이 쿠데타인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기여했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이리하여 5·18 민주화운동은 당장은 민주화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지만 세계적으로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선례가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북한의 세습체제와 인권 관련한 서술이 늘어난 점도 이 교과서의 특징이다.

이 교과서는 애초 "(북한에서) 아사자가 300만 명에 달하였다"고 서술했다가 국편의 재검토 권고에 따라 "특히, 이 시기에는 아사자가 대규모로 발생하였다"고 수정했다.
사진 설명에서도 '북송은 죽음이라며'를 삭제했고 (북한 주민들이) 쥐를 잡아먹는 사진도 교체했다.

김 교수는 "대안 교과서에서는 북한 현대사를 보론에서 다뤘는데, 새 교과서는 북한 부분을 보론화시키지 않고 본문에서 상당한 비중을 두고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국편은 다음 달 2일 국편 국사관에서 교과서 견본의 열람을 허용할 예정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자로 참여한 이명희 교수는 "현재 나와 있는 교과서들의 상당 부분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이 소중한 길이라는 인식을 하게 하는데 부족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 문제의식이 이 교과서를 집필한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미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훼손시켰던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비판적인 입장에서 쓰려고 했다"며 반박했다.

그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무조건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진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세상의 비판을 받게 된다면 달게 받겠다"고 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교학사 역사 교과서는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큰 비중을 둬 서술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우리 일반 정서와는 다른 내용은 국편이 검정심의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기존 교과서와 차이가 나는 내용은 북한 관련 부분일 것"이라며 "기존에 나온 교과서들은 북한 부분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반면 교학사 교과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습체제 등 비판할 부분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제 관건은 교학사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얼마나 많이 채택되느냐인데, 교사들이 논란이 되는 교과서를 정서적으로 꺼리는 경향이 있어 실제 채택률이 얼마나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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