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오모(41·여)씨는 복숭아 한 봉지(5~7개입)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장바구니에 담지 못했다.

봉지당 판매가는 1만7천500원, 4㎏짜리 쌀 한 봉지나 라면 20개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오씨는 "아이들이 한창 클 나이라 먹을거리에 돈을 아끼고 싶지는 않은데 고기나 과일이 너무 비싸서 사먹을 엄두가 안 난다"며 "정부는 나 정도 버는 사람이면 중산층이고 요새 물가도 낮다고 하는데, 난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식통계와 다른 체감물가…추석이 두렵다 관련 이미지

◇중산층·저소득층 모두 체감물가 스트레스 심각 1일 현대경제연구원이 8월13일~19일 국민 1천15명을 조사해 내놓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중산층과 체감중산층의 괴리' 보고서를 보면 OECD가 산출하는 기준으로 중산층에 드는 응답자의 54.9%는 자신을 저소득층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정확히 평가하는 경우는 45.1%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들 두 집단은 체감물가도 다르게 느꼈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답한 중산층 응답자는 올 상반기 물가가 5.0%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이 저소득층이라고 답한 중산층 응답자는 체감물가 상승률이 무려 5.7%에 달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OECD 기준 중산층임에도 스스로 저소득층이라 생각하는 것은 기대치보다 삶이 열악하고 불안과 불만이 크기 때문"이라며 "이를 방치할 경우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이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매달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은 '적자가구' 역시 체감물가(5.7%)가 높게 나타났다.

이는 쓰는 것보다 버는 게 많은 흑자가구(5.2%)나 지출·소득이 균형을 이룬 가구(5.4%)보다 더 가파른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가 올 4월 낸 보고서로는 미래에 갚아야 하는 대출원금까지 포함할 경우 한국의 중산층 중 적자가구는 전체의 54.8%나 된다.

중산층의 절반가량이 소득보다 지출이 많아 늘 허덕이는 셈이다.

소득이 있더라도 20대는 취업난, 30대는 내집 마련, 40대는 교육비, 50대는 노후 보장 부담에 늘 돈이 모자란다.

삶의 질이 열악해지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중산층의 78.4%가 우리 사회의 소득·재산분포가 불평등하다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은 그대로인데 가계부채가 늘어 중산층 규모가 감소했다.

불투명한 경기전망 탓에 실제 중산층조차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 정부는 물가가 안정됐으니 안심하라고 해서는 안된다"며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감 물가, 하반기 정책 부담 우려 당국은 지금 물가수준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대해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9개월 연속 1%대의 안정세를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도 올해 물가상승률이 연간 1.7%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1999년(0.8%)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러나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올해 7월16일부터 22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천12명을 설문한 결과에서 살림살이를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체감물가'라는 답변이 39.2%로 가장 많았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8월 현 대통령이 우선 해결해야 할 국정 과제로 '물가안정'을 꼽은 국민은 7%로 남북관계 개선·북핵해결(7%)과 같은 수준이었다.

높은 체감물가에 따른 사회적 불만은 정치적인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에선 물가상승률과 국정지지율은 역(逆)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물가가 상승하면 지지율이 떨어지고, 반대로 물가가 잠잠하면 지지율도 회복된 것이다.

강원택 한국정치연구소장은 "지금은 국민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지만 물가가 흔들리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은 민생과 동떨어진 북방한계선(NLL)이나 종북 논란 등 정치적 이슈만 놓고 싸우고, 있다"면서 "정책 수단을 가진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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