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서천을 여행한다면 훗날 흑백사진처럼 아름다운

갈대 위 후드득 철새가 날아오른다. 금빛 가을의 끝 무렵인 11월부터 겨울 내내 서천은 낭만과 운치가 풍성해진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서천으로 여행을 준비한다. 술 익는 마을이 있고, 서걱대는 갈대숲을 거닐고,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비상을 만날 수 있는 서천은 명품 겨울여행지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서천을 여행한다면 훗날 아련한 흑백사진처럼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전통주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한산 소곡주를 곁들인다면 시공을 초월해서 신선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첫 번째 잔 입 안에 탁 털어 넣으면 그 향기로운 맛에 반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고, 두 번째 잔 주욱 들이켜면 어느새 손끝, 발끝이 취해버려 몸을 일으킬 수 없게 만든다 하여 사람들은 소곡주를 ‘앉은뱅이술’이라 불렀다. 한산 소곡주는 1300년 전 백제왕실에서 즐겨 음용하던 술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한국 전통주 중 가장 오래된 술이다.


1800년경 주류성의 아래 마을인 호암리에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9년 7월 3일 고(故) 김영신씨가 선조들로부터 전수를 받아 충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을 받았다. 현재는 우희열 씨가 한산 소곡주 무형문화재다. 문화재 기능은 시어머니 김영신(1997년 작고) 씨에게 전수받았다. 스물일곱 살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소곡주를 담갔으니 벌써 40년이 지났다. 10여 년 전부터는 아들 나장연 씨 내외와 함께 술을 빚는다.

소곡주는 연한 미색이 나고 단맛이 돌면서 끈적거림이 있고 향취는 들국화에서 비롯된 그윽하고 독특한 향을 간직하고 있다. 술의 재료가 되는 잡곡의 냄새가 전혀 없는 최고급 찹쌀로 빚어 100일 동안 숙성시켜 만드는 전통곡주다.

소곡주 공장을 안내하던 우희열 씨가 독에서 방금 떠낸 소곡주 한 잔을 권한다. 잘 익은 벼이삭처럼 노릇한 술은 향기로운 누룩향이 풍긴다. 코끝을 맴도는 누룩향의 단내를 맡으며 한 모금 맛보니 술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입 안이 달콤하다. 독 안의 술을 맛본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항아리 뚜껑을 열고 한잔 두잔 넙죽 받아 마시다 보니 얼굴이 벌게지며 취기가 오른다.

우희열 씨는 소곡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첫 번째가 물이요, 두 번째가 누룩, 세 번째가 술 익는 온도라고 했다. 소곡주에는 찹쌀과 누룩, 향을 위한 약간의 국화잎과 부정을 타지 말라는 의미로 홍고추 서너 개가 들어가는 것이 전부다. 우씨는 한산의 건지산 밑에서 나는 약수로 담가야만 제대로 된 소곡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근 서천 지역에서도 소곡주를 담가 먹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도 꼭 건지산 물을 가져다가 술을 빚을 정도라고 했다.

소곡주를 빚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쌀을 찐 후에 누룩과 쌀로 밑술을 담그고 3일 정도 발효시킨다. 발효가 되면 밑술에 고두밥(찹쌀)을 비벼 덧술을 빚은 후 항아리에 넣고 100일 동안 땅 속에 묻어 발효, 숙성시킨다. 소곡주가 백일주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일주는 약주로는 가장 오래 발효시킨 술이다. 발효 기간이 길어질수록 술 빚기가 어렵고 술이 쉬기 쉽다. 반면 백일주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그 맛도 깊고 은근하다. 소곡주는 18%로 정도인데, 그리고 이 약주를 증류해 매력적인 43%짜리 불소주도 만들어낸다.

좋은 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산 소곡주의 달콤함은 꽤 오래 혀 끝에 남아 솜사탕처럼 입안이 화해진다. 무릇 좋은 것일수록 솜사탕처럼 아쉬움을 남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시 찾고 싶은 여운이 생길 것이니 말이다.  앉은뱅이 술을 뒤로 하고 길 건너편의 한산모시관으로 마실을 나선다. 이곳은 서천의 대표 특산품인 한산모시의 역사와 직조 과정을 볼 수 있는 곳. 한산모시는 백제시대 이래 1000여 년 동안 진상품이었던 서천군의 명물이다.


모시관 내에는 옛 베틀과 길쌈에 필요한 도구, 다양한 모시 제품이 전시된 전수교육관과 길쌈놀이의 유래, 모시 직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수관, 전통공방 등이 있다. 모시관에서 모시 배틀을 쉼 없이 당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애잔하다. 부르튼 입술과 손등을 보니 고집스런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수많은 관광객이 묻는 말에 친절한 대답도 잊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도 정겹다.


한산 모시관을 나서 신성리 갈대밭 찾아간다. 서억서억 바람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갈대밭으로 가는 길은 스산한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송광호와 남한군 이병헌이 처음 마주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늦가을이 되면 노랗게 꽃을 피우는 갈대밭의 한없는 흔들림을 보며, 날아가는 새들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폭 200m, 길이 1km로 면적이 무려 7만여 평에 이르는 갈대밭은 솜털처럼 부드러운 하얀 꽃이 선선한 바람 장단에 맞춰 춤사위를 펼치는 가을에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신성리 갈대밭은 12월에도 매력을 잃지 않는다.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든 수만 마리의 철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대밭의 장관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이 좋다. 철새를 좀더 쉽게 만나려면 금강하구언의 철새 탐조대를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량포구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면 일찍 일어나 서해의 해돋이를 감상해 보자. 서천의 북쪽 서면의 바닷가에 갈고리처럼 매달려 남북으로 뻗은 마량리의 독특한 지형 때문에 마량포구 일출은 12월 20일부터 1월 초순까지는 섬이나 육지에 걸리지 않고 순전히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만날 수 있다.  포인트는 마량포구 방파제와 포구 입구 언덕에 위치한 서천해양박물관 앞이 좋다.

12월에는 아침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해가 뜬다. 반면 어느 곳에서 봐도 좋은 낙조는 4시 40분부터 5시 30분 사이. 일몰이나 일출을 감상하고 몸도 녹일겸 서천 해양박물관을 관람하는 것도 좋다. 함정 모형의 해양박물관은 개인 사업을 하는 이장복 씨가 전 재산을 들여 완성했다.

1층 전시실은 식인조개 등 패류와 바다의 포악자 청상아리 등 어류 박제 2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2층 전시실은 각종 어류와 식물의 화석과, 다양한 종류의 공룡이 전시되어 있다. 거대한 송림에 둘러싸인 춘장대해수욕장에서는 오전 썰물 때 맛조개나 골뱅이를 잔뜩 잡을 수 있다.

○ 관련 웹사이트
- 서천군청 :
http://tour.seocheon.go.kr/tour
- 한산소곡주 : www.sogokju.co.kr

○ 문의
- 한산소곡주 : 041)950-0290
-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 041)950-4224
- 한산모시관 : 041)950-4431
- 금강하구둑 : 041)950-4579

○ 대중교통
- 서천역 : 041)953-7788,
www.korail.com
- 시외버스터미널 : 041)953-0776

○ 자가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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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및 행사
- 한산모시문화제, 마량포해짐이&해돋이 축제, 기벌포대보름제, 동백꽃&주꾸미 축제, 동백꽃&수선화축제, 자연산광어축제, 홍원항 전어축제, 금강철새탐조투어

○ 주변 볼거리
- 한산모시관, 신성리 갈대밭, 이상재선생 생가, 비인오층석탑, 서천 해양박물관, 마량포구, 홍원항, 동백정, 춘장대해수욕장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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