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이사장에 최경수 선임…노조 강력 반발

이사장 장기공백 사태에 표류하던 한국거래소가 100여일만에 새 수장을 찾았지만 관치 논란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후보 심사 첫 단계인 서류심사에서 애초 유력후보로 꼽혔던 인물들이 대부분 탈락하면서 '들러리' 의혹이 일었고, 청와대의 특정후보 내정설도 내내 논란이 됐다.

결국 내정설의 주인공이었던 최경수 전 현대증권 사장이 26일 거래소 주주총회에서 차기 이사장으로 선정되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 100일 고심 했다는데…관치로 귀결 지난 6월 실시된 이사장 후보 공모에는 최 내정자를 비롯해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 이철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임기영 전 대우증권 사장 등 11명이 지원서를 냈다.

'내정설 1호'였던 친박계 김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은 거래소 이사장직 도전 의사를 밝혔었지만 정작 공모에는 응하지 않았다.

당시 업계에선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부담을 느낀 청와대가 김 전 의원을 만류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거래소 외에도 BS금융지주와 신용보증기금, 우리금융지주, KB금융지주까지 '관치금융' 논란이 전방위적으로 터져나오면서 결국 청와대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잠정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 때문에 한국거래소의 이사장 공모 절차는 이후 두 달 반이나 멈췄다가 지난달 28일에야 재개됐다.

하지만 관치 논란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지난 9일 임원추천위원회는 후보 11명 중 6명을 서류심사를 통해 탈락시켰는데 이중 상당수가 애초 유력후보로 꼽혔던 인사들이었다.

합격자 5명은 최 내정자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다.

특히 일부 후보는 단순히 청와대 관계자와의 인맥만으로 유력후보로 거론됐고, 거래소 내부에선 서류심사 직후인 9일 금융위 고위 관계자가 '최 전 사장을 차기 이사장으로 내정했다'고 통보해 왔다는 주장까지 제기돼 난맥상이 심화했다.

업계에선 청와대가 공모절차를 3개월 가까이 중단한 것 자체가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난을 줄이기 위한 '소나기 피해가기'였던 셈이란 비아냥마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면접 단계부터 다른 후보들은 들러리 역할만 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내정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국민이 낙하산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 내정자는 정당성에 큰 상처를 입은 채 임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노조와 갈등 '산 넘어 산' 노동조합과의 갈등도 최 내정자에게는 부담스런 부분이다.

노조는 최 내정자가 거래소 이사장 하마평에 오르내릴 때부터 수차례 성명 등을 통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급기야 공모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그가 차기 이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노조는 지난 24일부터 서울사옥 1층 로비에 천박을 치고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최 내정자가 도덕성과 경영능력에 흠결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증권 사장 재직 당시 투자를 결정한 선박펀드와 현대저축은행의 투자 실패로 회사가 손해를 봤고, 사내 비리를 미온적으로 처리하거나 은폐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노조는 소송전을 불사하며 최 내정자에 대한 해임을 쟁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 전 사장은 지금도 현대증권 노조와 10여건의 소송을 벌이고 있을 정도로 현대증권 재직 당시부터 노조에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면서 "노조를 대화 상대방으로 여기지 않는 성향이라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극단적 대치가 이어지기보다는 최 내정자와 노조가 막후협상을 통해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거래소 관계자는 "노조가 최 전 사장에 반대하고 있지만 이제 와서 재공모는 현실성이 없다"면서 "노조와 갈등을 빚어 온 일부 임원을 교체하는 등 평소 요구해 온 사항을 관철하려는 의도도 깔려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미 여기에 해당하는 일부 임원이 유관기관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투자업계에선 최 내정자가 낙하산 논란과 노조와의 갈등 등에 발목을 잡혀 취임 초반 조직 장악에 실패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이미 이사장 공백 장기화로 각종 현안 추진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거래소 운영이 또다시 표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최근 세 차례 연속으로 일어난 전산사고 때문에 비상대응체제를 통째로 뜯어고쳐야 할 형편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로 대체거래소(ATS) 시대가 개막하면서 변화한 환경에도 적극 대응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증시침체로 증권가에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새 이사장은 시장 안정화와 투자자 보호, 업계의 발전을 위해 행동력 있게 나설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여건에서 최 전 사장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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