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피파랭킹은 2010년 3월 현재 178위다. 이웃나라 태국은 99위를 기록하고 있다. 단순히 이 두 나라의 세계랭킹을 보면 축구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라들처럼 보인다. 라오스를 여행하다보면 아프리카대륙 사람들처럼 운동장 곳곳에서 축구를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닳아서 너덜거리는 공을 차고,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 넣어 만든 공도 종종 눈에 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태국 스포츠방송이 중계하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나 세리에A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사람들. 이들에게 한국이 월드컵에 진출한 것은 큰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축구를 사랑하는 라오스 사람들에게 EPL의 박지성은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인이다.

이들이 이처럼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다. 온순하고 낙천적인 성격과 별반 놀이시설이 없는 라오스에 축구공 하나면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의 라오스에 축구리그가 있다는 것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처럼 화려한 경기장도 아니고 회원을 모집해 집단으로 이동하며 응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오스에는 8개의 1부 리그 축구팀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라오국립은행과 상무(국군)를 비롯해 내무부축구단, 라오아메리카, 교통부, 비엔티안시, 씨티코피, 에스라 등 8개 구단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올 시즌 2승1무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에스라(Ezra)팀’의 구단주가 우리 한국인이라는 것. ‘에스라’ 발음이 쉽지 않은 라오스 사람들에게는 ‘에살라’로 더 잘 알려진 팀. ‘여호와가 도우신다’는 뜻의 ‘에스라(Ezra)’는 ‘시드기야’왕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스라야’의 아들로, 제사장이며 모세의 율법에 능한 서기관이었다. 또 애국정신이 투철하고 부패한 도덕과 종교를 개혁한 인물로 성경은 전하고 있다.

수도 비엔티안 외곽 동독사거리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방비엥 방향 8Km지점에 위치한 에스라센터에는 19세까지 연령별로 구분, 50여명의 청소년들이 모여 학교통학과 축구연습을 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국교수교 전인 1994년 LMC(라오스선교사회)소속으로 라오스를 밟은 김재양 단장은 1992년 방콕에서 선교사역을 마치고 특정국가 여행허가를 얻어 이곳으로 왔다.

정인택 장로와 사업가 자격으로 라오스에 온 김 단장은 1995년 오필환 선교사가 이끌었던 할렐루야선수단이 라오스를 방문하면서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끊임없는 노력과 ‘용산원동교회 정현민 목사’의 도움으로 2002년 10월 부지를 마련하고 구장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야산에 원시림이던 불모의 땅을 불도저로 밀고 삽과 괭이를 동원해 손이 갈라지도록 돌을 골라내길 꼬박 1년, 맨손으로 시작한 공사는 2003년 10월 현 구장인 에스라센터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선수였다. 김 단장은 공사를 진행하면서 틈나는 데로 라오스 전역을 돌아다녔다. 지방에서 200명 이상을 모아 ‘에스라컵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그 중 재능 있는 선수를 하나 둘씩 선발해 이곳으로 영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첫해에 남자25명과 여자18명 등 총 43명의 1기 선수가 탄생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배출한 1기 여자축구선수들 전원이 라오스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영광을 얻어 지금의 명문구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김재양 단장은 “라오스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며 체력과 실력을 겸비한 청소년들이 아주 많다”고 말하며 “기회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주기 위해 이 구단을 만들었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김 단장은 “에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저력을 가진 팀으로 타 구단에 이미 소문이 났다”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모아 변해야한다는 도전정신을 가르치며 그것이 결과로 나타날 때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자신들의 불행을 극복하기보다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려는 것이 이곳 청소년들의 특징”이라고 말하며 “이들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단장은 또 “선진축구를 배우고 실력향상을 위해 12시간 이상 방콕까지 트럭으로 이동할 때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 눈물이 나더라”며 그러나 “전지훈련지로 한국을 데리고 갔던 아이들이 선진국인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하고 “열심히 하면 라오스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지금은 신앙심으로 무장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오스 국군(ARMY)팀과의 경기가 치러진 지난 3월 13일, 도심 한복판 ‘짜우아누웡 국립경기장’은 양 팀 응원단의 함성으로 비엔티안을 흔들어 놓았다. 이날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김 단장은 좌불안석이었다. 심한 몸싸움으로 에스라의 선수가 넘어지면 가장 먼저 그라운드로 내달렸다. 혹 경기 중간에 아이들 목이 마를까봐 물병을 가져다 놓는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 단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명을 피해 어두컴컴한 곳으로 이동해 애간장을 태웠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진정한 승부의 세계였다.

이날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김 단장의 입가에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입이 마르고 목이 타들어가는 긴장의 연속, 이렇게 힘든 경기를 치르면 아이들은 더 큰 자신감을 얻을 것 같았다. 가쁜 숨소리를 내며 널부러져 있는 선수 하나하나를 찾아다니며 마실 물을 손수 가져다주는 김 단장은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는 선수들을 위한 얼음 팩도 잊지 않고 챙겼다.

경기 직후 김 단장은 “에스라축구단은?라오스 국가대표선수를?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이라며 “이 정부에서 사업으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하지만, 자생능력이 생길때까지 지속적인 후원자가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아쉬워 하고 “에스라의 모든 아이들이 신앙심을 바탕으로 믿음을 생활화하며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60년대 국가대표와 서울시청 감독을 역임하고 우리나라 사상최초로 해외에서 프로축구단을 출범시켜 화제를 모았던 성남 ‘성산교회’ 홍인웅(69) 에스라축구단 총감독은 “먹는 것은 부실하지만 라오스 청소년들의 축구 열기는 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며 “어설픈 기교를 부리지 않고 감독의 지시를 잘 따르기 때문에 발전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설명하고 “아직 때가 묻지 않아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부인과 함께 라오스에 온 한국축구의 산 증인 홍 감독은 “지금도 훌륭하지만 2~3년 지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뚝심은 운동선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에스라단원들에게는 뚝심은 물론 의욕과 패기도 넘친다”고 말하고 “이곳을 거쳐 간 청소년들은 반드시 라오스 축구의 밑거름이 되고 이 나라의 기둥이 될 것”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고 엔 백(Go & Back) 방식으로 치러지는 라오스 1부 리그 우승상금은 3천만낍(약 3,300달러)이다. 리그를 우승하고 축구협회에서 지원하는 1천만낍(1,100달러)을 모두 합하면 우리 돈 500만 원 정도다. 그러나 이 상금과 지원금으로는 50명이 넘는 단원들 뒷바라지가 쉽지 않다.

그래서 최근 김 단장 부부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동독대학교 좌측 길 후문에 조그만 식당을 개업한 것이다. 단원들을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식당을 운영하면 부식의 대량구매가 가능하고 양껏 먹일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다. 이 식당일은 동갑이자 동지이고, 평생 반려자인 부인 정금천(53) 씨가 도맡고 있다. 7년이 넘도록 한국 땅을 밟아보지 못한 부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는 김 단장은 “에스라구단의 70%는 우리 집사람이 만들었고 지금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가장 큰 보람으로?여긴다”며 “식당을 운영하면 먹는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을 것 이라는 집사람 제안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곳 에스라 단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차별은 두지 않는다. 10살부터 시작해 19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되고 지역이 모두 달라 융화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런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단원들 전체가 10명씩 5개조로 나뉘어 일주일마다 돌아가며 김 단장 부부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은 평등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었다. 이런 발상을 한 것은 ‘우리는 너희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라고?김 단장?부부의 지인이 귀띔했다.

그런데 새해 들어 반가운 가족이 한 명 더 늘었다. 나병수(40) 감독이 에스라단원들에게 축구지도사역을 위해 한국에서 날아왔기 때문이다. 나 감독은 장성고와 아주대를 졸업한 후 이랜드구단과 할렐루야축구단 선수를 거쳐 2006년 초부터 할렐루야 총감독을 역임한 베테랑으로 동대문 ‘룻교회’에서 파송, 에스라에 합류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축구지도자 1급자격증을 취득한 나 감독은 라오스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아 무서운 지도자이자 때로는 다정한 삼촌이 되어 버렸다.

주일 낮 예배에 참석한 나 감독은 “나도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이곳 단원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고 신앙고백을 통해 밝히고 “변해야 한다는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에스라 단원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며 “축구종주국 영국국가가 찬송가 79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주고는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찬송가를 열창하기도 했다. 주일 낮 예배를 집전하고 한국인에게 통역을 자청한 김 단장 부인 정금천 씨는 신도를 위한 간증시간을 갖기도 했다.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이웃 주민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자 예배당 안은?약속한 것처럼?숙연해졌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며 흐느끼는?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무엇이 이들의 가슴을 흔들었는지 처음 이곳을 찾은 기자는 알 수?없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삶에?지친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찾았구나’하는 느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소 지루할 것 같은 예배시간이지만 하느님 말씀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 청소년들에게 성경의 가르침처럼 ‘회개하고, 반성하며,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는 강제로 시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기에 기자는 더욱 놀랄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에스라센터에서 만난 김재양 단장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문민철 선교사의 안식을 위해 태국에 갔었다”며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동료가 안타까웠는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김 단장은 “우기에 쏟아지는 비로인해 운동장이 패이고 잔디가 떠내려가는 불편함으로 선수들이 연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렵게 실내체육관 부지는 마련했는데 건축은 여유가 없어 엄두를 내지 못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에스라에서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되면 3개월 이상 이곳을 떠나 소집훈련을 받기 때문에 정규교육을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이곳에 정규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설립하고 성장기 아이들에게 양육을 위한 충분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 가까운 나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라오스 청소년들은 현재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바깥세상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고 사는 아이들”이라며 “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이날 아침, 비록 구단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얻어다 입힌 옷이지만 마음은 똑같은 옷을 입은 에스라 단원들. 그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연습을 시작했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는 지혜의 기도였다.

우리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손길을 절실히 기다리는 곳, 라오스에 한국인의 긍지를 심는 에스라축구단, 그곳이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약속의 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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