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은 '독도의 날'!
10월 25일은 '독도의 날'!
  • 이귀염 기자
  • 승인 2013.10.25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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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다양한 행사... '다케시마의 날'에 한 발 늦게 대응했다는 비판도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이해 전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 독도 전경     © 외교부


오늘 독도에서는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선언한 고종황제 칙령 제41호 113주년 기념식이 개최되며, 오후 2시 30분 서울시 광화문 광장에서는 '독도의 날' 기념식과 독도 문화 국민 축제행사가 열린다.

독도를 2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이 전시되고 독도를 지키자는 의지를 다지는 구호 제창과 합창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독도 사진이 전시되며, 100여명의 청소년들이 준비한 ‘독도사랑’ 공연도 있다.

경상북도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는 '대한민국 독도 특별전'이 열리며, 대구시는 오늘 하루 모든 시청 공무원이 '독도 사랑' 티셔츠를 입고 출근할 계획이다.

'독도의 날'은 일본 시마네현이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만들어 매년 2월22일 기념행사를 하는 것에 맞서, 경상북도 울릉군이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1900년 10월 25일을 참고해 2008년부터 기념하고 있다.

이후 독도 관련 일부 시민단체가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달라는 청원을 3차례나 국회에 제출하고 정부에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으나 외교적 마찰 등을 이유로 아직껏 실현되지는 않고 있다.

앞서, 일본 자민당은 '다케시마의 날'을 중앙정부 차원 행사로 치르겠다는 선거 공약을 했다가 한국의 반발을 의식해 취소하기도 하는 등 기념일 국가 제정 문제는 한일 양국 외교에 긴장감을 불어 넣어 왔다.

일본 '다케시마의 날'에 대한 맞불 대응으로 '독도의 날'을 제정하는 것에 대해 팽팽한 찬반 논란이 있다.

강도를 더해가는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에 맞서기 위해 독도의 날을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기념일로 반드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일본은 벌써 8년 전부터 다케시마의 날이라면서 독도를 자기네 것인양 국제적으로 떠들고 있는데, 뒤늦게 독도의 날이라며 정기 행사를 치르면 일본의 독도 선점 주장을 뒷받침해 주게 될 뿐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은 죽어도 모르는 독도이야기88'에서 발췌

이사부 장군 우산국 정복하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의 일부다. 그런데 신라장군 이사부는 독도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무 관련 없는 인물을 노래 가사에 등장시키지는 않았을 것이고. 무슨 인연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사부 장군은 울릉도만을 복속시킨 것이 아니라, 독도를 포함하고 있는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학계에서는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한 서기 512년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고유의 영토가 되었다고 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열전 이사부 조에는 “여름 6월에 우산국 귀복하다. 우산국은 강주의 정동(正東)에 있는 바다 가운데의 섬으로 이름하여 울릉도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를 정복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우산국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싸우지도 않고 점령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그것이다.

정말로 그랬을까? 삼국사기 열전 이사부 조에서는 하슬라(강릉) 군주 이사부가 뱃머리에 나무 사자를 내세워 우산국을 정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략...>

이사부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우산국 사람들이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동물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사부는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배에 실었다. 며칠 뒤 전투는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우산국 사람들은 매우 완강했다. 이사부는 사자를 뱃전에 내세웠다. 우산국 사람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사자들이 뱃전에서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사부는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에는 이 성난 사자를 풀어놓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몸을 찢어버리도록 하겠다. 어떻게 할 것이냐?”

그토록 사납던 우산국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괴물 앞에 기가 죽었다. 우산국의 왕은 당장 항복하고 공물을 헌상할 것을 약속했다.

신라는 우산국을 정복한 후 어떻게 다스렸을까?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 의종 11년 기록에 ‘동해 가운데 울릉도라는 섬이 있는데 땅이 넓고, 토질이 비옥하여 옛날에 주현(州縣)을 두었고…’라는 문구가 전해온다.

옛날에 주현을 두었다는 말은 신라에서 우산국에 주현을 설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라 정부에서 직접 통치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신라가 편입한 우산국의 영토는 울릉도와 독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만기요람(萬機要覽・1808년)>이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8년)> 등에서 한결같이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는 모두 우산국(于山國)의 땅’이라고 적고 있다.

우산국이 512년 신라에 귀속될 때 울릉도와 독도가 함께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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