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기가 막힌다. 어이없다. 적반하장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지만 이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본을 낮잡아 부를 때 우리는 흔히 도국근성(島國根性)을 가진 민족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한국의 식자 사이에서는 어느 때부터인가 이 말의 사용을 스스로 자제하게 되었다.

일본 국민을 싸잡아 ‘섬나라’민족이기 때문에 성정이 옹졸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이 말을 일본인들이 좋아할 리 없을 것이라는 배려에서다.

자칫하면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도 자신의 눈에 박힌 들보를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을 가리켜 ‘쪽발이’라고 부르던 것도 이제는 거의 들어보기 어렵다. 중국 사람을 ‘되놈’ 또는 ‘짱골라’라고 부르던 말은 이제 사어가 되었다.

이처럼 나라와 민족 사이에는 무언중 서로를 이해하고 친숙해지려는 풍조가 조성되어 온 것이다. 그것은 경제력의 증진, 무역의 발달, 문화교류의 활발, 유학생의 확대, 관광의 활성화 등으로 먼 나라들이 모두 가까운 이웃이 된 연유도 있지만 전쟁보다는 평화를 추구하는 인류 공동의 목표에 다가서고자 하는 마음이 한결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우고 있는 민족은 영토를 빼앗겼다고 생각해도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이슬람 신봉국들과 2000년 만에 조국을 되찾은 유대교의 이스라엘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같은 이슬람 민족이면서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 종파싸움으로 극렬 대결하고 있으며, 한국과 북한은 자유민주주의냐 공산사회주의냐 하는 이념 대결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엄중한 정전 사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나라들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평화스럽게 교류하며 무역거래도 타국과 비교하여 2,3위를 다투는 교역을 하고 있다. 군국주의의 잔혹함으로 조선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안겼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함께 살아가는 운명공동체로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양국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는 ‘독도’문제는 애당초 일본에서 거론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이 수백 년 전의 지도와 근현대 세계 각국의 지도로 정확히 드러났다. 일본의 양심적인 식자와 지리학자, 역사학자 등은 모두 독도가 조선 땅임을 알고 있으며 기회가 있으면 이를 강력히 주장한다. 이를 잘 알면서도 엉뚱한 말로 자기 자신을 속이고 일본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다.

지금 일본은 어처구니없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자 자손들이 집권 중심세력에 자리 잡았다. 이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레퍼토리는 ‘찬란했던 일본 제국주의 망령을 불러들이는 길’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한국을 강제로 집어삼키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를 유린했다.

그리고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과 일전을 벌이다가 원폭세례를 받고 비참하게 항복했다. 6.25전쟁의 특수가 없었다면 일본의 부흥은 20년 이상 더디었을 것이라는 것은 미래학자들의 주장이다. 한국은 일본의 패망으로 독립하고서도 김일성이 저지른 민족상잔 때문에 패전국 일본을 살려주면서 20년 이상 뒤처진 상태에서 그나마 피어린 노력으로 지금의 경제부흥을 일궈냈다.

일본이 가만있으면 결코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그런데 일본은 틈만 나면 독도를 건들고 종군위안부를 부인하며 징병과 학병을 자진해 한 것처럼 둘러댄다. 수천년 내려온 언어를 말살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이 저들의 마음에는 ‘자진해서 스스로 행한 일’로 보이는 것일까.

우리는 점잖은 표현으로 일본 정치지도자를 ‘식자우환’이라고 꾸짖고 싶다. 참으로 아는 것이 병이다. 무식하다면 그런 말도 하지 않겠지만 알면서도 사실을 왜곡하여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고치지 못할 암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는 이등박문을 쏴 죽인 안중근을 가리켜 범죄자라고 공언했다. 일반 일본인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일본정부 장관과 차관이 공식기자회견에서 지껄인 말이다.

이등박문은 조선통감으로 부임하여 고종황제를 강압하여 을사늑약으로 주권을 빼앗고 고종을 퇴위시켜 강제 합병의 길을 텄다. 그에게 육혈포 세례를 가한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좀먹는 이등박문을 조선독립군 총참모장의 자격으로 응징한 것이다. 군인의 자격으로 적장을 사살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닌자의 암살과는 그 격이 완연히 다르다. 숨 쉬는 소리 빼놓고는 참말을 할 줄 모르는 극소수의 일본 관료 정치인들이 안중근을 범죄자라고 공언한 것은 일본입장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망언이다. 중국에서도 이에 대한 공식논평을 통하여 일본을 규탄했다.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라면 이를 취소하고 세계를 향하여 사과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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