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셧다운' 공멸 우려…올해로 11년째 법정처리 시한 넘길듯

올해 정기국회의 '하이라이트'인 예산심사가 본궤도에 올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들어가면서 다음 달 16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27일로 닷새 앞으로 다가온 헌법상 처리시한(12월2일)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되, 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겨 '준(準)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등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어 '예산국회'까지 파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준예산이 현실화하면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여야가 공멸할 우려이 크다는 점에서 극적 타결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 헌법규정 11년째 '무시' = 헌법은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해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10월2일)까지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30일 전(12월2일)까지 이를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2003년 이후로 매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여야는 연말까지 대치하다 12월30일(2003년·2005년) 또는 12월31일(2004년·2009년·2011년)에 가까스로 예산안을 처리하곤 했다. 지난해에는 해를 넘겨 1월1일 새벽에야 예산안이 의결됐다.

올해도 시한 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11년째 국회 스스로 헌법 준수를 무시하는 상황이 됐다.

정기국회 때 예산심사에 집중하도록 결산안 처리를 앞당기는 '조기결산제'가 2004년부터 시행됐음에도 국회가 예·결산 '늑장처리'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 '특검 대치' 준예산으로 불똥 튀나 = 법정시한 준수는 물 건너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준예산은 막아야 한다는 게 여야의 공통된 인식이다.

통상 각 상임위부터 예결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는데 최소 3주에서 한 달 가량 소요된다. 일정상으로 아직은 준예산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야가 예산안 자체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을 둘러싼 대치도 이어지고 있어 '예산국회'의 순항을 기대하기만은 어려운 실정이다.

민주당은 이른바 '박근혜표 공약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새누리당은 공약예산과 민생살리기가 직결되는 만큼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쪽이다.

무엇보다 여야가 국가정보원 개혁특위·대선개입 의혹 특검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예산심사에도 불똥이 튈 우려가 크다.

예결위 관계자는 "워낙 심사일정이 지연된 탓에 향후 예산심사가 한두 차례 파행을 겪으면 물리적으로도 준예산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준예산' 뭐기에…여야 '책임 떠넘기기' = 준예산은 정부가 일정 범위에서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잠정적인 예산을 말한다. 헌정 사상 한 번도 편성되지 않았다.

세부 법 규정이나 참고할 전례는 없지만, 가급적 최소 비용만 집행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신규 사업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정부에 따르면 준예산이 집행되면 예산안 357조7천억원 가운데 의무지출액, 공무원 인건비, 시설유지비 등을 제외한 140조8천억원 가량은 지출이 어려워진다.

미국의 2014년도 예산안이 제때 처리되지 못해 연방정부가 16일간 '셧다운(부분 업무정비)'된 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정부 기능이 유지되는 준예산 제도가 낫다고 하더라도 민생·경제 분야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준예산 우려가 커지자 여야는 한목소리로 준예산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상대 당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당·정이 준예산 우려를 부각하며 야당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청와대도 준예산이 편성되면 내년도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의 대승적 협조가 절실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여권이 준예산 우려를 부풀리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새누리당은 '준예산 자체가 국가혼란을 상징한다'면서 준예산을 기정사실화하고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며 "특검을 피하기 위한 술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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