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1인당 빚이 연간 소득에 맞먹는 수준까지 확대되는 등 가계부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빚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경제성장의 근간이 되는 소비의 발목을 잡아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또 부동산시장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예금금리는 대폭 내리고 대출금리는 찔끔 내리는 은행들의 '잇속 챙기기'까지 가세해 서민들의 시름 또한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은행들의 예금 금리 하락폭은 대출 금리의 8배를 웃돈다.

이에 따라 서민들은 저축이나 투자로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기는커녕 대출 부담에 시달리면서, 매달 이자 갚기에 급급해하고 있다.

◇부채 `날고', 소득 `기고'

올 들어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자주 부각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부채가 소득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규모 개인기업 등을 포함한 1인당 개인부채 증가율은 지난 2005년 이후 1인당 국민총소득 증가율을 줄곧 앞질렀다.

특히 작년에 원화 기준 1인당 소득 증가율은 3.0%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한 반면 부채 증가율은 6.2%에 달해 소득과 부채 증가율의 격차가 1년 전보다 1%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즉,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소득은 제자리걸음한 반면 부채는 그만큼 줄어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앞으로 성장률이 점차 회복하면서 부채 대비 소득 비율이 다소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임금근로자인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성장의 과실은 적어지는 추세다. 생산요소 투입으로 생긴 소득이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비율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06년 이후 3년 연속 하락했다.

현 시점에서 가계부채가 전체적으로 부실 위험에 처했다고 보는 전문가는 드물지만 소비 등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골칫거리인 점은 분명하다.

신창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빚 부담이 늘어나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가계부채가 소비를 1천400억 원가량 줄인 것으로 추산됐다"고 말했다.

다만 가계부채 문제는 소득이나 부채 규모에 따라 세분화해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은 "가계부채 문제는 과다채무 가구, 부채 보유 가구 등 한계상황에 있는 가구 위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 대출금리 인하 쥐꼬리…서민 고통 가중

여기에 가계대출 금리 인하에 인색한 은행들의 얌체 상술까지 더해지면서, 빚으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특히 은행들이 지난달 중순 이후 출시한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한 달 새 0.26%포인트 내렸지만 같은 기간 양도성예금증서(CD) 연동 대출 금리는 0.10%포인트 인하하는 데 그쳐, 대다수 서민들이 대출 금리 인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9일 현재 국민.신한.우리.기업.하나.외환은행과 농협 등 7개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348조20억 원 중 코픽스 연동 대출은 1조2천248억 원으로 전체의 0.35%에 불과하다.

우리은행 CD 연동 대출이 전체 가계대출의 90%가량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가계대출자 대부분이 금리 하락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시중은행들은 정기예금 금리 인하에는 발 빠른 모습을 보이면서 서민의 부담을 외면한 채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30일 현재 최고 연 3.30%와 3.20%로 지난달 말보다 각각 0.85%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CD연동 대출 금리 하락폭의 8.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외환.기업.신한 등의 은행들의 예금 금리도 0.68~0.80%포인트씩 내려갔다.

이에 따라 은행들의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 확대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잔액기준 예금은행의 예대금리차는 연 2.76%포인트로 9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2008년 11월 이후 1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황석규 교보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예대금리차 확대로 시중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은 전분기보다 0.05~0.10%포인트 상승했다"며 "시중은행들의 1분기 실적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이 예금 금리는 큰 폭으로 내리면서 대출 금리는 소폭 내리는 데 그쳐 서민의 빚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며 "어느 정도 시차가 발생하더라도 은행들은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 인하폭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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