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로 자본 축적 후 편법 승계했음에도 매출의 0.004% 기부

국내 점유율 70% 이상으로 밥솥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쿠쿠전자의 편법승계 의혹이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이미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구씨일가의 일감몰아주기와 편법승계를 비롯해 이번에는 또다른 계열사의 일감몰아주기 정황과 인색한 기부금 내역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난 16일 경제 전문 일간지 머니투데이는 쿠쿠전자의 편법승계 의혹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쿠쿠전자는 창업자의 두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관계사의 규모를 키운 뒤 합병을 통해 2세들에게 지분을 승계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매년 수십억원의 배당을 통해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전형적인 편법승계 방식을 택했다.

▲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2세들의 계열사 자본 확대 후 편법승계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구자신 회장(왼쪽)과 쿠쿠전자 구본학 대표(오른쪽).   

쿠쿠전자는 1978년 설립 이후 LG전자에 20여년간 밥솥을 납품하다가 1998년 ‘쿠쿠’라는 자체 브랜드를 출시했다. 쿠쿠를 설립한 구자신 회장은 LG 그룹 ‘구씨’ 집안과 먼 친척뻘이었기 때문에 꾸준히 LG전자에 밥솥을 납품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쿠쿠전자는 쿠쿠홈시스를 설립해 판매를 전적으로 맡기며 본격적으로 매출을 밀어주게 됐다. 유통을 책임지게 된 쿠쿠홈시스는 설립때부터 구자신 회장의 장남 구본학 씨가 53%, 차남 구본진 씨가 4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쿠쿠홈시스는 아버지 구자신 회장이 소유한 쿠쿠전자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으며 2001년 총매출 799억원 가운데 83%의 내부거래 실적을 올리게 된다. 이후 쿠쿠홈시스는 2004년부터 합병 직전인 지난해까지 90% 이상의 수익을 쿠쿠전자에서 올렸다. 이렇게 몰아준 일감으로 쿠쿠홈시스는 2000년 237억원에 불과했던 자산총계가 2011년 2천858억원으로 11배가량 급증했다.

쿠쿠홈시스는 늘어난 자산으로 쿠쿠전자에 대한 지분율을 2000년 27.0%에서 2011년 44.8%까지 확대시켰다. 이후 쿠쿠전자는 매년 20억~80억원의 고배당으로 아들 일가의 자산을 키워주다 합병을 앞둔 2011년에 자본금의 1천100%, 당기순이익의 70.1%에 달하는 220억원을 배당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쿠쿠전자가 쿠쿠홈시스를 흡수 합병하면서 구본학 씨와 구본진 씨의 지분율이 각각 33.1%, 29.36%로 올라간데 반해 구자신 회장의 지분율은 24.84%에서 9.32%로 떨어졌다. 이에 2대 대표이사로 구본학 대표가 취임할 수 있었고, 이는 전형적인 편법승계 공식을 따른 부자세습으로 나타났다.

쿠쿠전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16일 중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의 흡수 합병은 경영 효율성 확보와 기업가치를 극대화 시키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며 “고배당을 해 2세들에게 편법 승계를 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관계자의 말과는 달리 경영 효율성에 대해서는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의 내부거래가 많아 합병을 한다고 해도 매출이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더불어 계열사에 대한 쿠쿠전자의 일감몰아주기는 합병한 쿠쿠홈시스말고도 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70% 이상의 매출을 쿠쿠전자에서 가져가는 알루미늄판 제조업체 엔탑의 지분은 쿠쿠홈시스(42.2%), 구본학 대표(25.7%), 구본진 씨(17.9%), 구자신 회장(7.1%), 부인 최영순 씨(7.1%) 순으로 나눠 갖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쿠쿠전자 본사의 전경.  

이에 대해 쿠쿠전자의 관계자는 “엔탑은 알루미늄판 업계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업체로 현재 쿠쿠전자에 합병된 곳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으나 지분구조에 관한 내용을 묻자 “그 부분은 말씀드리기가 힘들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회사 설립 이전부터 자체 성장을 위한 일감몰아주기를 준비해 경영 승계 및 합병까지 치밀한 시나리오를 통해 움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일감몰아주기가 논란으로 떠오르자 합병을 통해 당국의 제재와 과세를 피하려는 일거양득식의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쿠쿠전자 관계자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며” 언급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매년 적자구조 없이 몸집을 불려온 쿠쿠전자는 사회 환원에 상당히 인색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에 따르면 쿠쿠전자는 2011년 매출액의 0.004%인 1천100만원을, 2010년에는 그 해 매출액의 0.007%인 1천6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일감몰아주기부터 합병으로 인한 편법승계 논란을 빚었던 쿠쿠전자가 최근 다시 이슈로 떠오른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지는 못할 망정, 자기 가족의 배만 불려나가며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일부 대기업의 악습을 닮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중앙뉴스 / 채성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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