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60년 만에 관동(關東)대학살 명부를 발견하고서도 정밀분석에 아직도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관동대학살이 1923년 발생한 일이어서 1938∼1945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와 지원을 규정한 법에 포함되지 않아 담당부처를 정하지 못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22일 국무조정실과 안전행정부 등에 따르면 국가기록원은 이달 초 주일본 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된 23만명의 명부 67권에 대한 복사본을 제작, 기존 명부와의 대조해 확인과 검증 등 정밀분석을 위해 담당기관으로 보냈다.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는 국가보훈처로, '일정시 징용자 명부'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로 각각 이관돼 분석이 시작됐다.

그러나 일본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피해자 290명의 이름을 담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는 갈 곳을 찾지 못했다. 갈 곳이 궁한 끝에 국무조정실이 맡았으나, 관련 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무조정실은 '조정'에 착수하지 못한 채 명부를 방치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에는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발생한 관동대지진 때 도쿄 일원에서 잔인하게 학살된 조선인 290명의 신상과 관련기록이 담겨 있다.

명부에는 일본인들이 '쇠갈쿠리(쇠갈퀴)로 개잡듯이 학살', '죽창으로 복부를 찔렀음', '곡갱이(곡괭이)로 학살' 등의 참혹한 학살기록이 있다.

당시 일본 군대와 경찰, 자경단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 수는 임시정부 집계 기준 6천661명으로 추정되지만 2만3천58명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에 추가자료를 요구하고 명부를 검증하는 한편 유족에 대해 위로금과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동대학살 담당부처 후보로는 외교부나 안전행정부, 교육부,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국무총리실 산하에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관련단체가 공동분석에 착수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입법을 진행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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