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진화론’의 중요한 골자가 ‘적자생존’입니다. 영어로 ‘Survival of the fittest’, ‘가장 적합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입니다. 그 과정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경쟁입니다. 경쟁에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이론을 사회 발전에 대입하니 그것이 곧 ‘사회적 다윈이즘’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힘을 얻었고, 이것으로 인간사회에서도 강한 자만이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강자는 승자가 되고 약자는 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경쟁은 사회 전반의 발전이 틀이 되고 원동력이 되었다고 잘못 알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1등을 하기 위한 경쟁으로 일관되어, 학교생활에는 아무런 기쁨도, 만족도 없는 고난의 연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에 가는 일이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잘 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경쟁이 없었다면 손기정이나 황영조 같은 마라톤 선수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오웬이나 볼트 같은 100미터 선수도 나타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경쟁 없이는 록펠러나 포드 같은 대기업가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자생존’의 피비린내 나는 경쟁 속에서 패자들의 삶이 이렇게 비참한 것이 된다면 승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줄 마음은 없습니다. ‘적자생존’이 생물학의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인간 생존의 원리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무한 경쟁’ 대신 ‘상호부조(相互扶助)’가 앞으로는 인간 생존을 위한 원리원칙으로 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피나는 경쟁 때문에 오늘 사람 사는 세상이 결코 살만한 세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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