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역사가 되었다는 말은 흔히 이미 흘러간 옛날 얘기라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위대한 의의를 후손들까지 길이 간직하고 살게 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과연 4.19혁명이 혁명으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혁명이라고 이름이 붙었으면 그것은 세상을 한번 바꿨다는 뜻이다. 사실 그렇다. 4.19혁명은 세상을 바꿨다. 우선 부정부패한 자유당 정권을 쫓아냈다. 부정선거를 자행하여 정부통령으로 나란히 당선한 이승만과 이기붕은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이기붕은 일가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고, 이승만은 이화장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가 오밤중에 하와이로 도망쳤다.

두 사람 다 한때는 나라를 위하여 대통령으로, 국회의장으로 노심초사 했다고 하지만 권력욕에 눈이 뒤집혀 스스로를 망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단죄된 이승만을 가리켜 요즘 ‘위대한 건국 대통령’이라는 호칭과 함께 광화문 네거리에 동상을 세우자는 사람도 생겨나고, 이승만 기념관을 국비로 세우자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혁명이 있은 지 이미 반세기가 흘러갔으니 이제는 아무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착각한 것일까.

그들 중에는 이승만을 규탄하는데 한몫 거들었던 인사들까지 끼어 있다고 하니 도대체 그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런 운동을 전개하는데 가장 앞장선 단체는 이승만기념사업회를 비롯한 극우성향의 단체들이다. 가뜩이나 보수와 진보의 다툼이 심상찮은 마당에 이들의 움직임에서 합리성이나 균형감각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극우와 극좌가 분열하여 치고받으면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세력이 설 자리를 잃는다.

이는 국론분열을 재촉하여 나라를 약하게 만들고 결국 망하는 길로 인도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를 막아야 할 중차대한 책임감이 있다. 왜냐하면 4.19혁명의 선두에서 싸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4.19혁명이 비록 5.16쿠데타로 빛을 잃긴 했어도 그 명맥은 아직도 펄펄 끓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책임이라고 단정한다. 4.19혁명에 공로가 있다고 해서 건국포장을 받은 사람이나, 증빙이 약하여 받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똑같다.

4.19세대는 한마음 한뜻으로 혁명을 성취했고 지금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운다. 비록 몸은 노경에 접어들었지만 어느 누구에게 보여도 기개만은 살아있다. 따라서 이승만을 숭배하거나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처럼 과대 망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내려야만 한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남겨줄 우리의 올바른 뜻을 역사 교과서에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했고,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던 사실이 있으며, 미국에서 프린스턴대를 나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부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 광복 후 미국에서 귀국하여 미군정하에서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고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파동으로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자유를 억압하여 경향신문을 폐간했으며, 발취개헌과 삼선개헌으로 영구집권의 길을 튼 사람이다. 독립운동의 공로를 깡그리 까먹은 독재정치의 화신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3.15 부정선거를 통하여 국민을 아예 발싸개만도 못하게 취급했다. 그가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은 이뿐이 아니다. 6.25사변이 터졌을 때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는 ‘서울 사수’를 외쳤다.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정부는 서울을 지킬 터이니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조용히 집에서 추이를 살피라고 육성으로 방송한 이가 이승만이다. 그리고 자기는 한강다리를 넘어 살며시 서울을 탈출했다.

대통령의 서울사수를 굳게 믿은 시민들은 안심하고 있다가 한강다리가 폭파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대통령의 말만 믿었던 수많은 시민들은 인민군 세상이 된 서울에서 인민재판을 받거나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야 했다. 제헌국회의원과 2대국회의원 77명이 한가하게 서울에 남았다가 납북된 사실은 대통령 서울사수발언의 영향력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국민을 버렸던 이승만을 이제 와서 지상 최대의 큰 인물로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이를 후세학생들이 그대로 믿는다면 4.19혁명정신은 어디에서 그 진가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역사교과서는 후세들을 위한 교훈으로 가득 차야만 한다. 이번에 많은 애를 쓴 저자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는 비빔밥이 되었다. 보수든, 진보든 간에 모두 상처를 입었다.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 역사를 가르치면 안 된다. 찬란한 선조들을 기리고 혁명의 빛나는 꼭지를 더욱 빛나게 해야만 한다. 4.19혁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자유의 상징이다. 역사교과서는 더욱 가다듬어 4.19역사를 바로 쓰고 가르치는데 추호의 지장도 없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4.19혁명정신을 선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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