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산업·한국레미콘공업협회 “레미콘 기사들은 법률상 자영업자”

14일 새벽, 아주레미콘과 운송계약을 맺었던 이창재(51) 씨와 최형재(47) 씨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약 40m에 달하는 고공 타워크레인에 올라섰다.

이들은 아주산업의 부당해고를 알리고 복직과 노조 인정을 이뤄내기 위해서 타워크레인을 점거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산업 측과 한국레미콘공업협회는 어디까지나 이들은 개인 사업자일 뿐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건설노조 “부당해고 철회, 레미콘 노동자들의 삶 보장하라”

중앙뉴스는 15일 아주산업의 부당해고에 맞서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중인 마포 GS건설 신축 아파트 현장을 찾았다. 최근 날씨가 많이 풀렸음에도 여전히 공기는 차가웠다. 이곳에서 전국건설노동조합 최명숙 사무국장을 만날 수 있었다.

▲ 아주산업에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한 이창재(51) 씨와 최형재(47) 씨가 농성에 들어간 마포 GS건설 신축 아파트 분양 현장의 타워 크레인.     © 채성오 기자

최명숙 사무국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현재 레미콘 기사들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조출·철야 수당 등 모든 법적 안전장치에서 제외됐다”며 “이러한 노동 환경을 조금이나마 개선코자 이 분회장과 최 사무장이 파업에 참여하고 노조에 가입했는데, 아주산업은 이를 빌미로 그들을 계약해지란 명분하에 내쫓았다”고 말했다.

이어 “관례상 매년 특이사항이 없을 경우 계약을 자동으로 연장해왔는데 10여년간 계약했던 이들이 11월 준법 투쟁에 참여한 이후 갑자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며 “사측과 수차례 대화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주산업과 계약을 맺고 있는 GS건설의 타워크레인을 점거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설노조가 말하는 대로라면 레미콘 기사들의 노동 환경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최 사무국장은 “레미콘 운송업을 하는 사람들은 1회 운송횟수를 기준으로 돈을 받는다”며 “1회 운송료는 3만원선으로 한달 평균 70~80회꼴인데 각종 유지비를 제하고 나면 실 수익은 절반가량이다. 최저임금 기준에도 못 미칠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는 사측의 탕뛰기 도급계약서 때문인데 본래 건설기계노동자들은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노동 여건을 보장받도록 되어 있다”며 “하지만 사측에 유리한 도급계약서 탓에 새벽에 출근하고 철야 근무를 해도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최명숙 사무국장은 마지막으로 “부당해고의 빌미를 제공한 도급계약서를 표준임대차계약서를 통해 임금 체계의 재정립으로 레미콘 노동자들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아주산업 “그들은 노동자 아닌 개인 사업자, 우리도 답답하다”

▲ 아주산업 전경   © 아주산업 홈페이지
이에 대해 같은 날 아주산업 관계자는 중앙뉴스에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어디까지나 개인 사업자이며, 노조활동은 명백한 노조법상 불법행위”라고 전했다.

도급 계약서가 사측에 유리한 사항 위주로 명시돼 있다는 건설노조의 주장에는 “건설업계의 특성상 정확한 출퇴근 시간을 기재하기 어렵고, 야간 작업이 대부분인 상황”이라며 “언제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고 했으나 사실이 아니며, 사업 파트너로써 지켜야 할 규정을 근거로 구성돼 있다”고 전했다.

아주산업 관계자는 레미콘 기사 2명의 계약해지와 관련해 “해당 기사들은 평소 반복적인 운송 거부를 통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며 “잦은 운송 거부가 해지 사유임에도 아주산업은 계약 만료 시점까지 기다렸다가 45일전 적법한 절차를 통해 해지를 알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지만 해당 기사들은 계약 만료 시점이 지난 후에도 계속 출근하며 사측의 해지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내용 증명까지 보냈다”며 “관례상 자동 계약 연장을 한 적이 없으며 매년 계약서를 작성해왔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아주산업 관계자는 “다른 사업장의 기사들과는 운송료 인상을 포함한 다각적인 부분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루는 등 소속 노동자가 아님에도 도의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했다”며 “하지만 이번 사태처럼 노조 인정 여부와 수당 보장 등의 사안은 사측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소원할 내용 아니겠나”라고 입장을 밝혔다.

아주산업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타워크레인 점거 등 단체행동으로 기업 이미지와 신인도 하락은 차치하고서라도 재무 손실, 고객사 이탈 등으로 이를 정상화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향후 이러한 불법적 단체행동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 한국레미콘공업협회는 “기존 사법부의 판단을 볼 때 이번 타워크레인 농성 참가자들을 비롯한 레미콘 운송 기사들은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라며 “대법원의 판결 중 산재 적용의 경우, 영세한 사업자들을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일 뿐 이를 노동자로 인정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본 노동계 현실

그렇다면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레미콘 운송 기사들은 개인 사업자일 뿐 노동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현행법상 특수고용노동자인 레미콘 기사들은 1년 단위로 업체 측과 재계약 여부를 개별적으로 결정하는데 이들은 개인 사업자(자영업자)로 분류돼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법적으로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레미콘 운송 기사 등 총 6개 직종이다. 여기에 종속 관계에 있는 근로 환경에도 계약상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직종까지 확대하면 그 수는 대폭 늘어난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를 39개 직종 약 250만명으로 집계하고 있으나, 고용노동부에서는 2010년 말 기준 약 11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민권익위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해 불평등한 계약과 고용 불안정을 겪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에서 “노동위의 알선을 통해 합의가 성립하면 이를 민법상 계약의 효력을 지니도록 해 실효성을 갖는다”는 안을 추가하며 특수고용노동자는 사업자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특수고용노동자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추세인 법원의 판례와 배치된다. 최근 법원은 특수고용직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보기 어려우나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2012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경기 용인시 88컨트리클럽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판정 취소소송에서 이들을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했다. 노조법 2항에는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 급료 및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자”라고 명시돼 있어 경기보조원의 수입을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해석한 것이다.

특히 서울행정법원이 재능교육 해고 학습지 교사 9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결문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사용종속 관계 등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집단적으로 단결해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조건을 협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헌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구체적 근거를 제시했다.

결국 2천76일만의 노사분규가 타결된 재능교육은 학습지 교사들의 노조를 인정하고 계약해지자들을 전원 복직시켰으며, 단협을 통해 노조 생활안정지원금과 협력기금 지급을 약속했다.

이러한 판결이 이어진 후 특수고용직과 관련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노동 3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레미콘 기사들의 노동권 보장 운동이 그 임계점에 달해, 아주레미콘 사태가 기폭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리며 노동자도, 실질적 자영업자도 아닌 레미콘 기사들의 외침에 노동계의 대응이 주목된다.

[중앙뉴스 / 채성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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