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페스탈로찌-하운(河雲) 김형중

▲ 하운(河雲) 김형중
전라북도 익산시에 거주하는 하운(河雲) 김형중 교장(전북여고)선생님을 보면 시문(詩文)과 그림에 뛰어난 신사임당(1504~1551)과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자 페스탈로찌(1746~1827)가 생각이 동시에 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신사임당은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 그림 자리도 산수도 초충도도 유명한 당대의 명사이다. 그리고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으며 어려서부터 경문을 익히고 문장, 침공, 자수에 능했고, 시문(詩文)과 그림이 뛰어나 여러편의 한시 작품이 전해진다.

조선 전기의 화가로써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안견의 영향을 받은 화풍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정교함을 더하여 한국 제일의 여류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산수, 포도, 풀, 벌레등을 잘 그렸고, 특히 자녀교육에도 남 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형적인 어머니 교육상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또 한 분.

스위스의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는 민중교육자로써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분이다. 그는 취리히대학 재학중 애국단체에 가입, 사회운동에 가담하였고 사색과 저술을 하였으며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밀려오자, 슈탄스에 고아원을 설립, 고아들을 돌보았고, 그 후 부르크도르프, 이베르돈에 학교를 세워 독자적인 교육에 전념하였다.

▲ 하운(河雲) 김형중
당시의 유럽사회를 분석하여 계층간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지적하고 이를 시정함에는 정당한 교육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주요저서로 백조의노래 은자의 황혼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 자연에 대한 나의 탐구등이 있을만큼 잘 알려진 교육자이다.

특히 페스탈로찌는 가난한 농민들의 벗, 민중의 교사 그리고 ‘새교육’의 사도(師道)로 자임하고 저 유명한 유언을 남겼다. “나는 평생 가난한 농민들의 벗으로 살고자 했다. 그러니 내가 죽은 다음 내 묘를 장식하지 말라. 농민들의 묘와 같아야 한다.”

김형중 교장 선생님을 소개하며 위에 신사임당과 페스탈로찌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두 분의 삶이 김형중 교장 선생님의 삶이 비슷하기에 그렇다.

하운은 일선 교육행정가요, 시인이요, 교육학의 이론가요, 문학박사이면서 가정에서는 철저한 모범가장이요,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공.사 분명하여 청렴결백한 사도(師道)로 소문난 분이다.

스스로에게 채찍을 우선하여 가하며 나와 가정을 그리고 사회와 세상의 정도(正道)을 밟아가는 진지하며 정교한 하운의 삶에 태도에 깊이 머리숙여 진다. 겸손하며 한없이 넓은 도량, 냉철하면서 미래지향적인 하운의 혜안(慧眼)에서 시대의 정신을 읽을수 있다.

김형중 교장 선생님은 1947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성장한다. 소년시절부터 시문(詩文)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시인으로, 문학박사로써 두각을 나타낸다. 대학 강사와 교수로 오랫동안 생활하며 중국 연변사회과학원 문화연구소 교수를 2년여에 다녀오는가 하면, 국어교육을 학문을 연찬하면서 문학관련 저서도 여러권 출간했는데 칼럼집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와 논문 연암 박지원의 사유체계에 대한 반성적 고찰등의 이론서와 문예지를 출간하여 저술가로써도 명성이 높다.

이런 노력으로 교육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대한적십자사 총재로부터 인간생명과 보호 공로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 표창, 한국영농신문사로부터 한국농촌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국가와 사회적으로 이미 검증받은 공인이었다.

호남지역의 문학탐구의 총아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전주시 소재의 문예연구로 한국문단에 등단한 이후 본 문예지를 통하여 문학공부를 하는 한국 문예 연구 문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문학 발전에 노력을 기울인 하운의 일은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리고 전북시인협회 이사와 전북문인협회 이사를 역임하면서 전북지역의 시문학 발전에 기여한 바 있다.

한국언어문학회, 한문학회, 문학과 이론비평학회, 어문학회 등에서 우리나라 언어와 한문을 병행 연마하는가 하면, 전북 생활체육회, 익산시 라이온스, 전북 JC 특우회, 전북경제실업연구회, 전북경연합 등에서도 사회봉사를 한 바 있다.

또 2008년에는 한국영농신문사에서 개최한 제5회 한국농촌문학상에 농촌문예작품에 응모하여 수상하는 영광을 업었다. 이어 한국농촌문학회에서는 하운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중책을 맡겼다. 한국농촌문학회 이사와 한국농촌문학회 호남지회장을 맡으면서 일약 농도(農道)인 전라북도의 위상을 한 층 높혀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문화와 해외의 문화를 접목하고자 결성한 ‘세계화 지구촌 다문화 한가족 문화를 열어가는’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와 적극적인 인연을 맺으면서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이사와 해외문단 신인작품상운영위원장을 맡아 국내외에 문화토양 뿌리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 하운(河雲) 김형중
현재는 전라북도 전주시에 소재한 전북여자고등학교 교장에 재임하며 그간 ‘김립의 작품성향 연구 외’ 다수의 논문을 저술하였고, 저서로는 ‘애국 계몽기’의 신문 연재 소설을 발간하고 시집은 ‘허수아비들의 노래’와 칼럼집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등의 많은 저서를 내었다.

고향 전북 익산에서 거주하며 내조와 가정교육에 여념이 없는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북경대학 법학원 재학)과 두 딸에게 충.효.예를 강조하고 서예, 독서 등을 평소 열심히 공부시키고 있다.

본디 선비의 기상과 남아의 도를 선친으로부터 교육받고 자란 그는 올 곧은 성품과 온화한 기품을 지닌 그는 천상천하(천상천하)교육자요, 저술가요, 문화운동가이다.

정직과 성실, 신의와 노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사는 그는 오늘도 애오라지 교장실에서 ‘전북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편, ‘21세기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위해서 한국농촌문학회와 한국해외문화교류회에서 중추적인 자리매김으로 새로운 문창(文窓)을 열어 문화보급을 운동하는데 선봉에 서고 있다.

가정에서는 신사임당과 같이 엄격한 가장이요, 자애로운 온화한 어머니 역할까지 하고, 밖으로는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찌처럼 학교와 사회현장에서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처럼 전인교육을 위한 몸부림으로 온힘을 다하고 있다.

하운(河雲)의 아호처럼 강과 구름이 머무는 그 곳에 오늘도 하운 김형중 교장 선생님이 걸어가야 할 나의 인생(My Life) 나의 길(My Way) 을 위해서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글쓴이  김우영(작가.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사무국장)




< 이 순간에 >


지금 이 시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얼마나 즐거운 삶의 축복이던가.


지금 이 시간

내가 당신과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넉넉한 삶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잡념을 앗아가는

즐거운 삶의 합창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얼마나 화려한 시간이던가.


지금 이 순간에

스쳐가는 아름다운 인연들이

내 삶에 대한 엔돌핀을 만들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밝은 생각으로 내일을 설계할 것이다.



▽ 하운(河雲) 김형중 프로필 

 ․ 1947년 전북 출생  시인 / 문학박사
․문예연구로 등단․ 전북 시인협회 이사 역임.
․ 한국 문예 연구 문학회 회장 역임․ 벽성대학 교양과 교수 역임.
․ 전주 문인협회 이사․ 전북 문인협회 이사.
. 제5회 한국농촌문학상 수상. 한국농촌문학회 호남지회장.
. 한국농촌문학회 회원.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이사.
. 해외문단 신인작품상운영위원장․ 현재 전주 전북여자고등학교 교장.

<논문과 저서>
․ 논  문 - 김립의 작품성향 연구 외 다수
․ 저  서 - 애국 계몽기의 신문 연재 소설(2001)
․ 시  집 - 허수아비들의 노래(2006)
․ 칼럼집 -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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