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제약 일가의 이중 딜레마 '경영권 위협과 방어'

일동제약이 지배력 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지주사전환 계획이 무산되면서 경영권을 녹십자에게 넘겨줄 수도 있는 심각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

지난 24일 일동제약은 주주들에게 일동제약을 두 개 회사(일동홀딩스, 일동제약)로 분할하는 안건의 가부 여부를 물었으나 2·3대 주주의 반대에 부딪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험난한 경영권 분쟁을 앞둔 최고경영자(CEO)의 어려운 고뇌를 예상했으나 오히려 자신있는 얼굴로 행사장을 빠져나가 최고경영자(CEO)의 본심은 무엇인지를 궁굼케 했다.일동제약 대표이사는 24일 주주총회가 끝난 후 서울 서초구 일동제약 본사 강당을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언론에 보도된 대로 녹십자가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알고 있었으며 피델리티 또한 반대표를 행사할 것으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고 했다.

일동제약은 앞으로 2·3대 주주와 힘겨운 분쟁을 이어나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쉽게 예상해볼 수 있는 분쟁 시나리오는 2대 주주에 우호적인 이사선임안을 둘러싼 갈등과 경영 활동 자료 요구에 대한 공방, 공동 경영 요구와 이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 등이다.

오너 입장에서 이런 외부 간섭은 달가울 리 없다. 또한 조직 분위기도 해칠 수 있다. 그런데도 오너 일가의 얼굴에 '당당함'이 비춰진 이유는 주총에 앞서 표결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고, 이미 경영진 쪽에서는 후속대책이 마련되어 진 것으로 추측이 되고있다.

과거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여러 기업들이 사례를 보더라도 한동안 곤혹은 치뤘지만 공격하는 쪽이 성공한 사례는 드물었다.일동제약도 현재는 의결권이 제한돼 있는 자사주와 자회사들이 보유한 일동제약 주식을 백기사에게 넘기면 녹십자그룹과의 의결권 차이를 6%포인트 더 늘릴 수 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공격을 받았고 지금도 적지 않은 간섭을 받고 있는 현대상선은 주로 유상증자나 종류주식 발행으로 경영권을 방어해 왔다.

이런 방식의 주식 발행은 2대주주도 자금이 소요돼 반대하겠지만 1대주주 입장에서는 방어 수단이 없는 게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일동제약 역시 또 제3자배정 종류주식 발행 등으로 녹십자그룹에 대응할 수 있다. 제약업체는 R&D 투자에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따라서 자금 조달을 통해 기업 가치를 늘린다는 명분에 2대주주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일동제약의 불편한 심정은 굳이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알수있다. 주총이 있던날 오너 일가가 주주들을 의식했던 안했던 간에 이날에 그들이 보여준 자신감을 보면 최소한 녹십자그룹의 뜻대로 일동제약이 휘둘리지만은 않을 것 이라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이후 주총이 끝난 직후 윤 회장을 비롯한 일동제약 경영진은 7층 회의실에서 추가적인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이날 일동제약 관계자는 "현재 향후 대책에 대해서 밝힐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동제약 다른 관계자는 "주총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주주의견을 존중한다"며 "향후 기업가치를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이고 녹십자와도 지속적으로 대화해 나가도록 하겠다"는 자사의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주총에는 총 의결주식수 234만 여주의 93.3%인 218만 여주(364명)가 참석했다. 그러나 찬성 54.6%, 반대 45.4%로 전체 의결정족수의 3분의 2에 미달해 부결됐다.

녹십자의 지분 확대에 위기를 느낀 윤 회장 일가가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녹십자 측이 주총에서 이를 막아내는 일이 벌어지면 양측의 관계는 협력보다는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윤원영 회장이 실타래처럼 꼬인 경영권 방어과 승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업계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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