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마케터 밥그릇 뺏앗은 금융당국 생존권 박탈해도 되는 가치없는 존재인가"

지난해말 전국민의 개인 정보가 금융사의 보안 부주의로 인해 털리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당황한 금융당국이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기위한 요란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규제와 처벌 중심의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식을 벗어난 대책들이다.

금융당국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자 이에 놀란 당국은 허둥지둥 보안책을 만들다 보니 상당수는 실효성이 없는 미봉책일뿐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카드업계에서는 당국이 여론에 떠밀려 원칙 없이 그저 강력한 규제와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지적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사건 발생하자 가장먼저 당국자 문책론이 제기됐다.하지만 고위 당국자들은 "책임론보다 수습이 우선"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그러나 그들은 정작 수습보다는 처벌 위주의 대책을 쏟아내기에 급급했다.

최근 나온 금융회사의 텔레마케팅(TM)금지가 대표적인 사례다.이는 금융당국이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2차 피해를 막아보겠다며 3월까지 금융사의 TM을 금지한 조치다.이번 조치로 온 금융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2차 피해가 절대 없다고 단언해놓고 이런 극단적 처방을 내린 것은 결국 눈가리고 아웅인 격이다.텔레마케터들이 대량해고될 위기에 놓이자 당국은 금융사들에 대해 "해고를 하지 말고 기본급을 지급하라"고 '긴급지도'를 했다. 한마디로 미봉책이 또다른 미봉책을 부르는 꼴이다.

기업에 대해 영업을 제한해놓고 고용은 유지하라고 강압하는 것은 당국의 상식을 넘어선 횡포다. 당국의 횡포에 금융사들이 이를 순순히 따를지도 의문이다.

기본급을 지급하라고 하지만 텔레마케터 급여의 대부분은 실적급이다. 여기에 대고 '기본급을 지급하라'고 해봐야 본인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국은 알고 있을까?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로 줄잡아 6만여명에 이르는 금융 텔레마케터들은 졸지에 일감을 잃어 생계가 막막해졌다. 따라서 보험사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터들에겐 즐거워야 할 이번 설이 더없이 우울한 설 연휴가 되어버렸다.

텔레마케팅(TM) 영업이 3월까지 금지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될 처지인 이들은 아마 떡국조차 즐겁게 먹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이들의 항변에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처방이라는 것이 고작 금융회사의 해고 단속이다.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두 달간 휴가·교육을 보내라는 주문도 실적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는 TM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일 뿐이다. 업계에서는 텔레마케터 고용위기의 책임은 전적으로 금융당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불법 정보유통과 2차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무조건 전화영업을 틀어막아서는 안된다.이는 교통사고 났으니 자동차를 금지하겠다는 비유와 틀리지 않는다.

금융권의 TM은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방문판매법 등의 적용을 받는 합법적 영업이다. 금융당국이 이런 합법적인 영업을 일괄 금지시켰으니 나중에 조치가 풀려도 정상적인 TM영업이 가능할지 걱정된다.

금융당국의 헛발질 규제가 당장 텔레마케터들의 생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신규 채용 중지는 물론 보험대리점이나 외주 콜센터에선 해고·해촉이 이어지고 있다. 텔레마케터의 거의 대다수가 여성이며 TM 일로 생계를 꾸리는 여성가장도 많다.

텔레마케터는 월소득 200만원 미만이 전체의 83.8%에 달하는 전형적인 서민직종이고 직업 특성상 늘 상냥하게 고객을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텔레마케터는 특별한 자격요건이 없어 출산·육아 등으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의 대표적인 재취업 창구다. 이들의 눈물을 방치할 경우 고용률 70% 달성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이 2차 유출이나 2차 피해가 없다면서 무턱대고 막는 것이 능사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단의 대책이 특단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문제는 사태의 파장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영역’에서 발생한 전국민적 이슈는 크게 세가지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와 2013년 하반기 동양그룹 사태, 2014년 초 1억건에 이르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그것이다. 이 세가지 이슈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금융 소비자 보호’다.

저축은행 사태가 크게 불거진 것은 고금리 후순위채권을 금융 지식이 부족한 계층에 마구잡이로 판 탓이고, 동양 사태도 수년간 고금리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특전금전신탁이라는 요술 상자를 활용해 2조원 가까이 판 게 도화선이 됐다. 개인정보 유출은 두말할 것도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일련의 사태에서 관찰되는 금융 감독당국의 ‘무능’이다. 수많은 금융 소비자가 금융 회사들의 돈벌이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는 동안 당국은 그다지 한 일이 없다.이러한 무능과 두꺼운 얼굴이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것이 바로 이번 사태다.

금융당국은 텔레마케터 등의 반발이 거세지자 금융사가 책임지고 이들을 껴안아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전날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개최한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이번 (전화영업 중지) 조치는 국민들의 불안해소를 위한 한시적 조치인 만큼 텔레마케터들의 고용과 소득에 불이익이 없도록 금융회사가 대승적 차원에서 책임지고 고용 안정 보장 등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영업을 하지 않는 텔레마케터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라고 금융사에 강제할 방법이 없다.금융위는 이달 중 텔레마케터 등을 위한 보완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의 규제와 처벌 중심의 대책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고객정보를 유출한 KB국민·농협·롯데카드에 대해 3개월 영업정지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카드사 영업정지는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10년 만이다. 3개월간 신규가입과 대출업무를 전면 금지한다면 해당 카드사는 존폐가 위태로워진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 카드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감안한 조치겠지만 그것만으로 사태가 해결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텔레마케팅 종사자들의 일자리와 소득 안정은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사태를 불러온 일차적 책임은 보안과 개인정보 관리를 소홀히 한 금융회사에 있다.

금융당국도 관리감독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텔레마케팅을 통한 영업은 은행, 보험, 카드 등 금융권역을 가리지 않고 최근 몇년 사이 크게 비중이 늘었다. 보험업계의 경우 계약 갱신 및 유지만 하더라도 한 해 10조원가량이 텔레마케팅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정보화의 진전과 금융회사의 경영 효율화 전략이 텔레마케팅 시장의 급성장을 불러온 것이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고용조건이나 임금 수준은 전체 금융권에서 가장 열악하다. 금융회사들은 이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고객을 늘리고 큰 수익을 거둬왔다. 따라서 벌어들인 많큼 돌려주어야 할 때다.

[중앙뉴스/ 윤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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