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파벌문제로 한국을 떠난 안현수(빅토르 안, 왼쪽)와 파벌문제점을 주장한 추성훈 선수  (오른쪽)

빅토르 안(29·안현수)은 러시아의 국민영웅이 됐다. 15일 열린 남자 1000m 결승에서 '불꽃 질주'를 선보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 우리 선수들은 5000m 계주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을 비롯해 현재까지 ‘노 메달’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빅토르 안에게 직접 축전을 보냈고, 박근혜 대통령은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가 체육계 부조리 때문이 아니냐”고 질타했다. 안현수는 22일 러시아 사상 첫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에 도전한다.

에이스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된 데는 쇼트트랙의 파벌 문제가 가장 컸다. 현 쇼트트랙 남자대표팀 사령탑인 윤재명 감독은 2005년 선수들과 코치의 반대에 부닥쳐 대표팀 감독을 맡지 못했다.

안현수·최은경 등 대표팀 선수들과 전재수 코치의 목소리가 컸다. 몇 개월 뒤 이번에는 김기훈(1992년 알베르빌, 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감독 선임을 반대한다며 다른 선수들이 집단으로 입촌을 거부했다.

안현수·최은경 등 ‘간판 선수’를 제외한 이호석·서호진·이승재 등 대표팀 선수들이었다. 중앙선데이에 따르면“김 코치는 특정 선수를 편애하기 때문에 그 선수가 메달을 따도록 다른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해 왔다”며 “그런 코치 밑에서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학연보다 무서운 ‘에이스’와 ‘비(非)에이스’ 파벌이었다. 앞서 10년 넘게 감독 직을 맡았던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1991~2002년 국가대표팀 코치·감독)의 수제자 라인(김기훈-안현수)과 그렇지 않은 라인 간의 파벌 싸움이라는 분석이다. 전명규 교수가 감독을 맡던 시절 금메달은 김기훈과 전이경이 휩쓸었다. 이에 대해 ‘한국 쇼트트랙에서는 에이스 밀어주기가 횡행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금메달을 딸 한 명을 위해 다른 선수들이 외국 선수들의 진로를 막아주는 팀플레이란 것이다. ‘한국체대 출신 vs 비(非)한국체대 출신’ ‘전명규 라인 vs 비(非)전명규 라인’ ‘안현수파 vs 비(非)안현수파’ 등 각종 프레임이 생겨났다.

2006년 토리노 대회는 갈등의 정점이었다. 안현수는 남자 대표팀에서 나와 여자 대표팀 박세우 코치 아래서 지도를 받았다. 대회에서도 안현수는 이호석·서호진 등 다른 선수들과 떨어져 있었다. ‘1인자’ 안현수에게 가려 ‘2인자’로 대회를 마친 이호석은 “1500m에서 안현수에게 금메달을 안겨주기 위해 일부러 추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후에 안현수는 “금메달이 선수로서 최고 영예인데 양보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론 이 대회에서 한국이 남자 쇼트트랙에서만 금메달 3개(안현수1000m·1500m·5000m계주)와 은메달 2개(이호석1000m·1500m), 동메달 하나(안현수500m)라는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후 양측의 갈등은 더 심해져 안현수는 소속팀이던 성남시청의 팀 해체를 표면적인 이유로 걸고 2011년 러시아로 떠났다.

이준호 전 쇼트트랙 감독은 “현재 빙상연맹은 한국체대파와 비(非)한국체대파가 대립각을 세우며 견제하던 때보다 못하다”며 “연맹에 찍소리도 못하는 사람들만 살아남을 정도로 파벌이 심해졌다”고 밝혔다.

한편 태권도·유도는 용인대-마사회-한국체대의 3파전이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유도 선수 출신 재일동포 추성훈과 윤동식은 “용인대 선수와 판정까지 가면 항상 패했다”고 주장했었다. 추성훈은 일본 귀화를 택했고, 윤동식도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태권도계는 지난해 ‘고의 편파 판정’으로 패한 선수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서울시태권도협회는 “오심이었다”며 해당 심판을 제명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지만 판정 조작 뒤에는 뇌물·파벌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한국 스포츠가 엘리트 체육에만 한정돼 있기 때문에 파벌이 더 심해진 것이라고 분석한다.중앙선데이에 따르면 정윤수 스포츠문화평론가는 정규 교육과정 대신 운동만 해온 우리 스포츠 교육 현실을 꼬집었다. 각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학교장의 실적에 해당 학교 선수의 외부 대회 성적이 반영된다. 자연히 선수들의 정규 교육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스포츠 ‘파벌’에서 배제되는 것은 곧 한 사람의 생계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 정윤수씨는 “국내 스포츠 선수들은 이미 설국열차 끝 칸에 탄 셈”이라며 “체육계부터가 외부의 어떠한 충격과 탄력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폐쇄적인 집단이 됐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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