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18시50분 분 현재 18구 수습 신원확인..군-유가족 '침통'
함미 저녁 늦게 2함대로 옮겨
절단면 좌.우현 모두 파손..우측 절단면 타원형으로 파여

천안함의 함미가 침몰 20일 만에 뒤늦게 귀환했으나 실종 장병들은 끝내 살아서 귀대하지 못했다.





국방부는 15일 "오전 9시부터 진행된 함미 인양작업을 시작해 정오께 바지선에 탑재 완료했다"면서 "민.군 합동조사단의 과학수사팀과 실종자 가족들이 기관부침실과 사병식당 등에 진입해 수색작업 끝에 오후 5시30분 현재 시신 6구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서대호(21), 방일민(24), 이상준(20) 하사와 이상민(22) 병장, 안동엽(22) 상병, 임재엽(26) 중사(진급예정) 등이다. 이 중 안 병장은 기관부침실에서, 임 중사는 76mm 함포 아래 탄약고에서 각각 발견됐고 나머지는 사병식당에서 찾아됐다.





해군은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영현낭에 안치해 태극기를 덮은 뒤 헬기를 이용해 평택 2함대사령부로 옮겨 안치된다.





함미에는 당초 실종장병 44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돼왔기 때문에 앞으로 시신이 추가로 수습될 전망이다.





실종자 수색 및 시신수습은 오후 8시까지 계속된 뒤 함미는 고속정 2척과 초계함 1척의 호송을 받아 2함대로 이송된다.





앞서 군과 민간 인양팀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백령도 남방 1천370m 지점 해역에 가라앉아 있는 함미를 대형 크레인선과 연결된 세 가닥의 체인을 이용해 끌어올려 바지선에 탑재했다.




1분에 1m씩 서서히 물 위로 올려져 오전 9시11분 갑판위 사격통제 레이더실과 하푼 미사일 등의 모습을 드러낸 함미는 오전 9시30분부터 자연배수에 들어가 430t가량의 해수를 배출했으며 오전 9시58분에는 배수펌프를 이용해 504t의 물을 뽑아냈다.



이어 오전 11시50분 물 위로 완전히 드러난 함미의 절단면은 좌.우현 모두 파손됐으나 우측 절단면은 심하게 타원형으로 파여 침몰 당시의 강한 충격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날 인양작업은 너울성 파도로 난항이 예상됐지만 의외로 기상이 좋아 예정됐던 작업 시간이 단축됐다. 다만, 함미를 지탱하던 바지선의 거치대가 파손되면서 이를 보정하는 작업을 했다.



군은 오후 2시50분부터 3시5분까지 해난구조대(SSU) 40여명을 투입해 함내에 작업등을 설치하고 통로를 개척했으며, 오후 3시5분에는 합조단 과학수사팀 4명을 승조원 식당으로 들여보냈다.

오후 3시20분에는 실종자 가족 4명과 과학수사팀 4명이 함내에 진입해 실종자 수색작업을 진행했다.



인양에 앞선 오전 8시44분에는 사고 해역의 독도함에서 실종자 가족 대표 11명과 생존 장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모든 실종자를 수습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위령제가 열렸으며, 주변의 해군 전 함정은 15초간 애도의 기적을 울렸다.

실종자 수색이 모두 끝나면 함미를 실은 탑재 바지선은 평택 2함대로 이동을 시작한다. 바지선의 속도가 시속 5~7노트(9~12㎞) 정도로 느리기 때문에 150마일(240㎞) 거리의 평택항에는 16일 오후 4시 전후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은 이날부터 수중 잔해물 탐색을 위해 폭발 원점 반경 500m 이내를 정밀 탐색 중이며 무인탐사정인 '해미래호'를 투입했다.

민.군 합조단도 이날 함미가 탑재될 바지선에 현장조사팀 38명을 투입,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돌입했다.

현장조사팀은 군 인사 26명과 민간인 10명, 미국 조사요원 2명으로 구성됐으며, 민간은 윤덕용 공동조사단장을 비롯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요원 2명, 함정구조 전문가 4명, 폭발유형분석 전문가 3명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절단면을 중심으로 선체 전반에 대한 정밀영상을 촬영하는 등 선체 절단 원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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