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 향한 사정(査正)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이후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든 기업총수들이 속속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지난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7개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시작된 퇴진 흐름은 4일 최태원 SK 회장의 계열사 등기이사직 사임으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SK㈜와 SK이노베이션 등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모두 물러나 대주주 자격만 남은 상태다.

여기에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일부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해 기업 총수의 일선 경영 후퇴는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직 사퇴가 예상되는 계열사는 CJ E&M과 CJ CGV, CJ오쇼핑 등 3곳으로, 주주총회는 21일께 열릴 예정이다.

이 회장은 이들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을 일괄 사퇴하기보다는 재선임되지 않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도 향후 판결에 따라 계열사 대표이사 사임 문제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점쳐진다.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총수들이 경영에서 잇따라 손을 떼는 이유는 경영 활동에 가해지는 법적 제약과 무관치 않다.

당장 김 회장만 해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해당 업체의 사업허가 취소나 업무 제한이 불가피했던 상황이었다.

최 회장의 경우, 실형이 확정된 터라 남은 형기만큼의 수형 생활이 불가피해 실질적으로도 경영 활동에 제약이 컸다.

설령 기업총수들이 경영 복귀를 가로막는 법적 제약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배임이나 횡령 등 중대 경제범죄로 징역형 이상의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경영자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책임론과 비판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SK 측이 이날 최 회장의 사임 결정에 대해 "회사 발전을 위해 도의적 책임을 진 것"이라고 설명한 점도 경영인의 사회적 책임론을 의식한 입장 표명으로 이해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 경영인의 '백의종군'은 소속 회사에서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적지 않은 공백과 어려움을 초래하겠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시되는 흐름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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