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외부기관 복수 추천, 선택은 개별기업이 하도록"

올해 10대 재벌그룹 주주총회에서도 권력기관 출신들이 무더기로 사외이사로 선임된다.

일부 재벌그룹에선 자신들에 대한 전방위 사정과 경제민주화 압박에 대응해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들의 수를 더욱 늘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다른 재벌그룹들은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싶었지만 정치권에서 너무 강하게 민원이 들어와 권려기관 출신들을 물리치기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사외이사 제도가 애초 도입 취지인 대주주 전횡의 감시에서 벗어나 권력과 재벌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 시스템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사외이사 제도의 존재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대선 공약 중에 사외이사 제도 개혁이 포함되어 있다면서 비정상적인 사외이사 제도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 사외이사 선임관행 독립성 요원

재벌그룹들이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이른바 '예스맨' 또는 권력 출신 인사를 선호하는 행태는 사외이사 제도의 근간인 '독립적 판단과 견제'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룹 총수나 최고경영자(CEO)와 특수관계에 있는 사외이사들은 회사 또는 주주의 이익보다 사외이사 자리를 내준 총수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최근 동양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동양그룹 사외이사들의 '거수기'(擧手機) 행태는 이러한 관행의 맹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동양그룹 5개 계열사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들은 사태가 터지기 전해인 2012년 그룹 부실화와 관련한 안건에서 한번도 반대 표결을 한 적이 없었다.

업계에선 이들이 제 역할을 했다면 5만명에 가까운 피해자가 양산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양의 사외이사 중 절반가량은 사정기관 출신이었지만 전문성을 바탕으로 비정상화의 길로 접어드는 총수를 견제하기보다 거수기 역할에만 충실했다는 평가다.

결국 재벌그룹들은 청와대, 검찰, 국세청, 공정위 등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을 전문성보다는 로비 창구로서의 유용성에만 관심을 두고 활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야 할 사외이사 제도가 오히려 대주주와 권력기관을 잇는 '편리한 도구'가 되고 있는 비정상이 고착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기관 투자자와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제도의 유지 필요성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 '외부 인력풀' 활성화 시급…평가제도도 확립해야

비정상적인 사외이사 제도를 되살리기 위해선 경영진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일방적으로 고르는 현재 시스템을 손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독립된 외부기관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복수 추천하고, 이중에서 회사가 바람직한 인사를 찾는 것이 경영진과 사외이사간 유착을 막는 방안이란 것이다.

이미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후보 추천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사외이사 인력뱅크를 공동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이를 실제로 활용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박사는 "대기업은 사외이사 추천위원회를 두고 자체 인력풀을 통해 후보자를 찾는다"며 "외부에서 이를 대신할 서비스를 늘리고 유인책을 마련한다면 대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의 참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지금은 사외이사의 이사회 출석률이나 안건에 대한 찬반 여부 정도만 공개되기에 사외이사의 업무 충실도를 평가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하지만 평가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고위험 사업에 대한 투자나 오너의 독단적 판단, 비합리적 사업 진행에 대해 사외이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우리 사회에선 사외이사직이 '회사 경영을 도와주는 자리'라는 인식이 있다"며 "사외이사의 본연의 역할인 '경영진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주들이 부적절한 이사의 선임에 반대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윤진수 박사는 "사외이사 후보자가 해당 회사와 이해관계는 없는지 기관 투자자를 비롯한 주주들에게 보고서 형태로 알려주면 좋을 것"이라며 "외부의 독립적인 기관이 활동을 분석해 후보자의 자질을 따져보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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