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광풍'(改名狂風) 일어나는 진짜이유
먹고살기 힘들어 이름한번 바꿔보았습니다.

친구들의 놀림에 울면서 학교를 뛰쳐나온 아이는 외친다. 내 이름이 촌스럽다고 놀리잖아요 라고..이는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이름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 개명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개명(改名)의 바람이 부는 걸까? 요즘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이름을 바꾸는 이들을 종종 볼수있다.

개명(改名)이란 이름을 전환(轉換)하거나 글자 일부를 수정(修正)하는 법적행위이다. 그러나 개명을 하기 위해서는 호적을 바꾸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전제조건이 뒤 따른다.

개명이라고 함은 먼저 사람의 이름을 떠 올리게 한다. 그러나 사람 이름이 아닌 학교 이름, 땅 이름, 철도 노선 이름, 역 이름 등을 바꾸는 것도 개명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역세권 중 이름으로 인한 혼동과 오해를 막기위해 역 이름, 홍보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인한 역 이름의 개명이 제일 쉬운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는 2011년 기준으로 40파운드만 내면 자신의 이름을 바꿀 수 있고, 미국의 경우 개명 허가가 쉽게 나오는 주가 있는 반면에 허가가 나기 어려운 주도 당연히 존재한다.우리 대한민국 역시 과거 개명이 어렵고 돈도 수백만 원 가까이 들어가게 되자 개명에 대한 엄두를 내지 못하였으나 2005년 11월 대법원이 개인의 ‘성명권’을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내용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내놓으면서 개명 허가가 쉬워지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개명에 필요한 돈의 액수가 줄자 개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 나면서 '개명광풍'(改名狂風)이 전국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시절 개명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젊은이들과 귀화 시민들이 전체적인 개명 시장의 주연들이 었다.

현재는 연예인, 학생, 노인, 군인, 사업가, 성전환자, 교사, 심지어는 운동 선수는 물론 스포츠 감독들까지 개명을 많이 하고 있다. 개명 사유도 다양하다. 학생의 경우는 공부를 잘 해 좋은 대학에 붙기 위함이요 노인들은 운명을 바꾸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사업가들은 사업의 성공을 위해, 운동 선수들은 좋은 성과를 내,자신들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다. 점쟁이가 단명할 이름이라고 해서 개명하는 사례도 있다.

개명은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서 할 수 있는데, 과거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허가해 주었지만, 대법원은 2005년에 ‘이름이 인격권의 하나로서 자기결정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이 결정이 나온 이후 ‘개명의 자유’가 인정되었고, 그 결정 내용이 예규로 제정되었다.

즉, 개명을 허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고,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어 있는 등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누구나 개명을 허가받을 수 있게 되었다. 법원마다 허가 기준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실무상 신용불량이나 중한 전과가 있거나 재개명을 하려 할 때는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법원과 정부가 개명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개명 신청 건수나 허가율이 낮았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1995년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아동에 대한 개명허가 신청사건 처리지침’을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적이 있다. 그시절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은 것이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개명정책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1995년 당시 7만3186명이 개명을 신청해 96%가 허가를 받았고, 이후 개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면서 개명 신청이 크게 늘었고 법원 심사도 완화돼 허가율은 점차 높아졌다. 특히 대법원의 판례가 개명이‘대중화’되는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지난 2007년은 허가 건수 10만건에 허가율이 90%를 돌파 하면서 개명 허가가 급증한 ‘분기점’으로 기록됐으며 이에 대법원도 2008년부터 새로운 심사기준을 도입한 개명허가 신청사건 사무처리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법원 소식지 ‘법원 사람들’에 실린 개명 허가 12가지 대표적 유형을 자세히 보면 ‘출생신고서에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경우’는 단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

한자 넓을 홍(弘)을 큰물 홍(洪)으로, 형통할 형(亨)을 누릴 향(享)으로, 가죽 혁(革)을 풀 초(草)로 잘못 쓰거나 한글 이름 방그레를 방그래로 쓴 사례가 있었다.쌍(雙)경을 우(又)경으로, 강신영을 강신성일로 고치는 등 ‘실제 통용되는 이름과 일치시키기 위한 경우’도 비교적 단순한 개명 사례에 속한다. ‘족보상의 항렬자와 일치시키기 위한 경우’, ‘친족 중에 동명인이 있는 경우’ 등도 비슷한 유형이다.

‘부르기 힘들거나 잘못 부르기 쉬운 경우’는 허가 건수가 많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하아민, 김희희, 윤돌악 등의 이름이 법원 허가를 통해 바뀌었다.

‘의미나 발음이 나쁘거나 저속한 것이 연상되거나 놀림감이 되는 경우’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서동개, 김치국, 변분돌, 김하녀, 지기미, 김쟌카크, 소총각, 조지나, 이아들나, 경운기, 구태놈, 양팔련, 하쌍연, 홍한심, 강호구, 송아지 등의 이름이 소개됐다.

또 ‘악명 높은 사람의 이름과 같거나 비슷한 경우’, ‘성명철학 상의 이유로 개명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었다.법원 허가를 받아 한자 이름을 한글 이름으로, 한글 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각각 바꾸는 경우도 많았다. 외국식 이름을 한국식 이름으로 고친 사례들도 소개됐다. 한소피아아름, 김토마스, 윤마사꼬, 최요시에 등의 이름이 평범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밖에 귀화 외국인의 한국식 개명도 적지 않다. 축구선수 샤리체프는 ‘신의손’, 데니스는 ‘이성남’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방송인 로버트 할리는 ‘하일’로, 러시아 출신의 학자·교수인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박노자’씨로 활동 중이다.

우리는 연간 개명 신청 16만 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요즘들어 개명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다. 이 열풍 아닌 열풍의 바탕엔 20,30대의 이름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과거 부모가 준 이름을 평생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작금의 젊은 세대는, 이름 역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비교적 가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개명 신청 건수는 해마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걸로 보인다.

이름이 정체성을 담는 도구인 만큼, 그 이름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 인식도 고정관념일 수 있다. 조선 시대만 살펴봐도, 아명과 호, 필명, 친구 간에 부르던 이름 등 여러 이름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정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미래도 없다.부모로부터 지음받은 이름을 바꾸어선 안 된다는 인식 역시 사회가 급변하면서 갈수록 희미해 지고 있다.

여기에다 이름을 바꾸는 데는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희구하는 마음 외에도 개성을 찾고자 하는 속성도 존재한다. 이름엔 개별성과 중복성이란 양면이 있는 탓에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이름도 다르다.

대법원의 출생 신고 이름 분석을 보면, 이름의 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1945년 남자아이는 영수, 영호 영식 등 '영(永)'자 들어간 이름이 많았다.물론 여성은 단연 영자, 정자, 순자 등 '자(子)'자가 압도적이었다. 30년이 흐른 1975년엔 남성은 정훈, 성호, 성훈, 성진 등 '성'자 전성시대, 여성은 미영, 은정, 은주, 은영으로 이어지는 '은'자 유행 시대였다.

7080세대인 1980년대 들어서면서 한글 이름짓기가 젊은 부부 사이에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박차고나온놈이샘이나, 조아라우리고은이 등 파격적인 이름부터 이슬, 슬기, 초롱, 한별, 아람, 보람 등 다양한 한글이름이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많이 지어졌으나 90년대 중반 한글이름 열풍은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면서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최근 중국의 부상으로 한자 표기가 가능하면서도 영어 발음이 어렵지 않은 이름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법원이 집계한 최근 5년 치 개명한 사람들의 통계를 보면 남성은 민준, 지훈, 현우 순이었고, 여성은 서연, 지원, 서영이 1위에서 3위를 차지했다.

현대사회는 자기 PR시대다. 좋은 이름을 통해 누구에게나 기억되고 행복한 삶을 희구하면서도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는 해가 갈수록 개명 열풍으로 표출될 걸로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이름을 찾다 보면 오히려 개성을 잃고 모두가 한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과 같이 자신의 존재감마저 무력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친구따라 강남가는 식의 무조건적인 개명이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는 설득력있는 개명이 필요하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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