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진상조사단이 풀어야 할 과제는?

▲ ’스폰서검사’ 파문으로 검찰수사가 당분간 동력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다. 성상납 의혹이 불거진 직후 검찰은 일손을 놓은채 향후 파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검찰 내부는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천성관 전 검찰총장 내정자의 낙마와 인사파동으로 두세달동안 조직이 공회전한 지 일년이 채안돼 악재가 겹쳤다며 착 가라앉은 분위기다. 특히 사상최대 성상납 스캔들로 인해 검찰 조직 전체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 검찰 수사도 당분간 동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검사들의 추문 의혹을 밝힐 `진상규명위원회' 산하에서 조사 실무를 맡은 진상조사단 채동욱 대전고검장 단장은 건설업자 정모(52)씨가 제기한 뇌물, 향응, 성접대 등 3가지 의혹을 집중 조사할 전망이다.

정씨는 부산지검에 낸 진정서 등을 통해 "25년여간 100여명의 검사에게 향응 접대 등을 제공했다"며 "그동안의 뇌물, 촌지, 향응, 성접대 등에 대하여 엄격히 조사해 달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진상조사는 일단 `선(先) 진상규명, 후(後) 조치'라는 검찰총장의 방침에 따라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한 뒤 비리 또는 위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필요한 조치를 하는 형태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은 검찰 안팎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통상의 감찰이나 진상 조사와는 달리 `수사에 준하는' 진상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조사단에는 특별수사나 감찰 경력이 비교적 풍부한 검사들과 수사관 등 실무 직원들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사단은 우선 제보자인 정씨와 정씨 주변 인물들의 진술을 들어본 뒤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정씨가 만든 `접대 검사' 리스트의 진위를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정씨로부터 `향응 제공' 주장을 뒷받침할 물증인 영수증, 수표 번호, 입.출금 내역 자료, 향응 접대를 한 장소와 일시에 관한 기록 등도 제출받게 된다.

조사단은 정씨의 리스트에 올라있는 현직 검사들을 우선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전직 검사들에게도 협조를 구해 직접 또는 서면 조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번 의혹을 제기한 MBC `PD수첩' 보도 내용의 진위나 제보자 진술의 신빙성 등도 함께 조사할 전망이다.

문제는 정씨가 제기한 의혹이 과연 어디까지 확인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의혹 중에는 검사 징계시효(3년) 이내의 일들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수년 전, 심지어 10~20년 전의 일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씨의 주장과 의혹을 받는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 때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향응이나 뇌물, 성접대 등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접대를 받은 당사자로 지목된 검사장급 등 일부 당사자의 경우 `만난 적은 있지만 의례적인 만남이었다'는 정도로 해명하고 넘어가기에는 사안이 너무 커져 어떤 식으로든 철저한 확인이 불가피해 보인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흔히 검사는 명예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민감한 문제가 제기돼 검찰이 곤혹스런 입장이 됐다"며 "철저히 확인해 의혹을 해소하고 이번 기회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사범 단속 등 관련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도 올초부터 토착비리 척결을 검찰 수뇌부에 강조해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표적인 토착비리형 범죄에 검사들이 연루되면서 검찰 수사의 기초적인 신뢰부터 흔들리는 실정. 서울중앙지검 등 주요 지검에서도 군납비리와 기업,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당분간 수사가 힘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네르바,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PD수첩 쇠고기파동 보도,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등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 법원이 줄줄이 무죄판결을 내면서, 검찰 조직은 이미 한차례 위기를 맞은 상황. 여기에 성상납 스캔들이 겹쳐, 수사를 받는 피의자나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 모두 검찰조직을 불신하면서, 신규 수사나 대형 수사는 한동안 착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조직의 명예회복을 걸고 강행해온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사도 자의반타의반 유보됐다. 검찰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혐의가 있을 경우 사법처리한다는 강경론을 고수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정치적인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는 원칙론이 힘을 얻으면서 지방선거 이후로 수사를 연기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스폰서 검사’ 논란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검찰이 한 전 총리 수사의 동력을 상실해, 최악의 경우 수사를 중단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가운데 기업체로부터 향응과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일명 '스폰서 검찰' 에 대해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정치권과 국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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