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바람과 '강덕수 전 회장'의 STX호 침몰
‘인수합병(M&A)의 귀재’, ‘샐러리맨의 신화’로 주목받던 인물
 
 
 
'샐러리맨 신화'로 재계에서 주목받던 강덕수(64) 전 STX그룹 회장이 결국 구속됐다.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검찰은 앞서 지난 8일, 강 전 회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강 전 회장이 혐의를 받고 있는 배임액은 3천100억 원대로 횡령액은 540억 원대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윤강열 부장판사는 15일 강덕수 전 회장에 대한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며 “현재까지 수사 진행 경과에 비춰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오전 1시20분 영장을 집행했다.

지난해 12월 산업은행과 STX그룹 채권단은 강덕수 전 회장에 배임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경영진에 강 전 회장을 검찰에 고소해 줄 것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회사에 손실을 입힌 책임을 묻는 동시에, STX그룹과 강 전 회장이 비자금을 빼돌려 조성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그러나 문제는 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강 회장이 어느 선까지 의사 결정을 했는지를 파악해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채권단의 요구에 지난 2월 10일 STX중공업 현 경영진은 강 전 회장 등 5명을 배임 및 횡령혐의로 수사 의뢰했고 검찰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STX본사 빌딩과 강 전 회장 자택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검찰은 “어디까지나 경영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관련한 수사”라고 선을 긋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 전 회장의 비자금을 추적해 이 돈이 정치권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또한 검찰은 강 전 회장이 지난 정권 인사들에게도 돈을 건넸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STX가 정관계에 적잖은 로비 자금을 건넸을 것이란 의혹이 일면서 강 전 회장 수사는 정치적 이해 관계가 맞물린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STX는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었던 강 전 회장의 작품이다. 1973년 쌍용양회의 평사원으로 입사해 본인이 갖고있던 성실함과 재능으로 승진 가도를 달려 쌍용중공업의 재무책임자(CFO)로 성장했다.

 IMF 금융위기로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자 사재 20억원을 털어 펀드를 끌어들여 경영난에 빠진 회사를 스스로 인수했다. 회사 몸집을 키워 10여년 뒤 재계 13위 그룹으로 도약했다.

강 전 회장은 쌍용중공업을 인수한후 회사 이름을 STX로 바꾸었다.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에 이어 2002년 산단에너지(구미·반월공단 열 병합 발전소 2기·현 STX에너지), 2004년 저속 대형 디젤 엔진과 선박기자재를 생산하는 STX중공업을 설립했고, 범양상선(현 STX팬오션)까지 차례로 인수하며 조선·엔진·해운 부문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2005년 STX건설을 설립하며 건설업에도 진출했고 2008년 중국 다롄에 STX조선해양 생산기지를 준공했다. 2007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를 인수 사명을 STX유럽으로 변경하는 등 세계로의 확장을 꿈꿨다.

설립 당시 5000억여원 수준이던 그룹의 매출액은 10여년 만에 30조원 수준으로 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조선 해운업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유럽 재정위기로 일감이 끊기기 시작하면서 계열사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회사는 하나 둘 채권단에 넘어갔고 강 전 회장은 결국 검찰조사에 이어 구속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강 전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중에 남은 재산이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집까지 모두팔았다. 재계에서는 강 전 회장이 변호사 비용도 없어 검찰 조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채권단이 강 전 회장의 경영권을 모두 가져가겠다 할 때도 “회사를 살리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못하겠느냐”며 강 전 회장은 채권단에 모든 걸 양보하기도 했다.
   
한편 강 전 회장은 구치소로 이송되기 전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하다. 성실히 조사받겠다"고 답변했다.법원은 또 강 전 회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는 A(61) 씨 등 STX그룹 전 임원 3명에 대해서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검찰이 STX그룹의 정·관계 및 금융계 로비 의혹을 추가로 수사할 예정이어서 파장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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