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고객을 상대로 지나치게 많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영사정이 어려워진 보험사들이 보험사기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소송 등에 나서면서 고객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화재의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양모(73.여)씨는 지난달 10일 운전 중에 앞서 가던 고가 외제차의 후미를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당시 양씨 옆 조수석에는 캐나다 유학 중에 잠시 한국에 들어온 조카 박모(47.여)씨가 타고 있었다.

경찰 현장 조사에서 박씨는 "캐나다에서 입국한 지 며칠 안 돼 사고 당시 졸고 있어 어떻게 사고가 발생했는지 모른다"고 진술했다.

당연히 자신이 가입한 보험사를 통해 원만히 사고가 처리될 줄 알았던 양씨는 며칠 뒤 흥국화재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사고 당시 피보험자인 양씨가 아닌 동승자 박씨가 운전을 하고 있었고, 사고가 나자 운전자를 바꿔치기한 의혹이 있어 양씨와 박씨를 모두 경찰에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양씨와 박씨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강하게 반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들은 경찰에 출두해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흥국화재는 박씨가 시차 부적응으로 사고를 냈다는 견인기사의 진술이 있다며 양씨를 압박했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최초 출발 지점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 영상에 양씨가 운전하는 장면이 확인되면서 소송을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 흥국화재 관계자는 "확실한 물증 없이 제보자의 진술만으로는 경찰에 고발하지 않는다"며 "증거가 무엇인지는 소송이 진행 중이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흥국화재는 견인기사의 진술을 녹음한 파일 하나만으로 양씨와 박씨를 고발 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험사가 보험금을 청구한 고객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거나 검찰에 진정했으나 무혐의로 판명난 사례는 많다.

조선족 김모(68.여)씨는 2008년 4월 초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골절상을 입고 수술을 받은 이후 척추 기형 판정을 받았다.

한화손해보험과 롯데손해보험 장기보험에 가입한 김씨는 이들 보험사에 장해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롯데손보는 김씨를 보험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한화손보는 김씨를 검찰에 진정했다.

40% 정도의 후유장해를 50% 이상으로 진단해 보험금을 과다하게 청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병원 원무과장의 제보 등이 결정적인 사유였다. 여기에 조선족이라는 김씨의 출신 성분도 고려됐다.

그러나 김씨는 사기 혐의에 대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씨는 양 사에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해 현재 한화손보에 1,2심 모두 승소했으며 롯데손보로부터는 보험금을 타냈다.

노모(42)씨는 2011년 전기공사 작업을 하다가 5m 높이에서 추락해 척추골절상을 입었다.

수술을 받은 노씨는 병원으로부터 후유장해 3급의 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아 2003년에 가입한 교보생명 종신보험의 재해상해 특약으로 장해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교보생명은 노씨가 제출한 진단서를 인정하지 않고, 3차례에 걸쳐 노씨에게 다른 병원의 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하기를 요구했다.

교보생명은 "노씨에 대한 자체 조사를 진행해 후유장해 3급이라고 볼 수 없는 동영상 등의 증거와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험금 지급 거부 사유를 설명했다.

교보생명은 노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경찰에 조사를 의뢰했으나 노씨는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노씨는 교보생명을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보험사기 적발 실적(금액)은 2010년 3천746억원, 2011년 4천236억원, 2012년 4천533억원, 2013년 5천190억원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앞의 사례들처럼 그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험사가 날로 치솟는 손해율과 저금리 상황으로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때 고객에게 보험사기 명목으로 보상을 축소하거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보험사기 적발을 강화하는 경향에 따라 고객을 상대로 한 소송 남용 등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보험사의 횡포를 제재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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