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CSI)'가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CSI는 105로 전월의 108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CSI는 작년 9월 102를 저점으로 올해 1월 109까지 상승곡선을 그렸고, 그 이후에는 108을 유지했는데 5월 들어 갑자기 3포인트 빠지면서 하락세로 전환했다. 5월 CSI 105는 여전히 기준치(100) 이상이지만 세월호 참사가 반영된 사실상의 첫 조사에서 상당한 폭으로 추세가 꺾였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경기 전망도 두 달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4~20일 중소제조업체 1천378곳을 조사한 결과 세월호 참사에 따른 소비 위축과 환율 하락이 겹치면서 중소기업의 '업황전망 건강도지수(SBHI)'가 91.5에 머물러 두 달째 하락했다고 밝혔다. CSI와 SBHI는 모두 기준치가 100이어서, 100 이상이면 호전 전망이 우세한 것이고 100보다 낮으면 그 반대다.

소비심리의 둔화는 구조적인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은퇴 후 생활유지에 대한 걱정으로 모든 연령층이 소비성향을 낮추고 있어 민간 소비가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KDI는 '연령별 소비성향의 변화와 거시경제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최근 10년간 전 연령층에서 평균소비성향이 감소하고 있으며 가구주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00년 이후 기대수명이 매년 평균적으로 0.45세씩 증가하는데 반해 노동시장 은퇴시기는 비례해 증가하지 않아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고, 이것이 소비성향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연령별 평균소비성향은 소득이 높지 않은 20~30대에 높았다가 상대적으로 고소득인 40~50대에 저축증가로 낮아지고,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높아지는 'U자 형태'를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40대 가구의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로 'W자 형태'의 특수한 모양을 보이고 있다.

KDI는 오늘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9%(신 지표 기준)에서 3.7%로 사실상 하향조정했다. 한국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수 개선 기미가 여전히 미약하다면서 당분간 경기 대응 차원에서 소폭의 재정 적자를 용인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KDI가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기는 했지만 경기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중국의 경기둔화, 미국의 금리인상, 환율상승, 가계부채 등 여러 불확실성이 있지만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우리 경제는 3.8%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경기지표들은 우리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에 진입했지만 내수부진으로 인해 성장 모멘텀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관건은 심각한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다. 수출이 견인한 경기 상승의 흐름을 내수 시장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서비스산업을 고도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도 육성해야 한다.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의 전환에 대비해 은퇴시기를 이연하고, 교육 및 채용 시스템을 정비해 교육 과잉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회경제적 구조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일본 같은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모처럼 찾아온 회복 국면을 최대한 활용해 과감한 개혁을 실행해야 한다고 경기지표들은 외친다.

개혁에는 그러나 진통과 저항이 따른다. 긴 안목에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과 함께 공명하며 저항을 돌파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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